녹색신앙 이야기

핵을 넘어 새로운 세상으로

작성일
2021-07-12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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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기로 결정을 했다. 다핵종제거설비(ALPS)를 통해 오염수의 핵종들을 제거했고, 남아있는 삼중수소(다핵종제거설비로 제거가 불가능함)는 희석하여 바다에 방류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한국과 중국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고, 한국 내 수많은 곳으로부터 규탄 성명이 발표되기도 했다. 심지어 일본 내의 여론도 일본 정부의 발표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오염수는 핵사고 이후 여전히 뜨거운 핵연료를 식히기 위해 투입되는 냉각수를 일컫는 것이다. 사고가 일어난지 1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핵연료가 뜨거운 상태로 존재한다는 말이고, 이를 해결할 방법이 딱히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녹아내린 핵연료가 식기만을 기다리며 계속 바닷물을 가져다 붓는 일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얼마 전 체르노빌에서 새로운 핵분열 반응의 조짐이 보인다는 기사가 난 적이 있다. 1986년 사고가 난 체르노빌 핵발전소가 새로운 사고를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미국 HBO가 만든 드라마 <체르노빌>은 체르노빌 핵사고 당시의 일들을 상세히 보여준다. 과학기술자들과 관료들의 뻔뻔스러움과 무능함이 불러온 재난이었다. 폭발로 인해 모든 연료가 녹아내린 핵발전소를 해결할 방법은 없었다. 그저 30km 반경의 모든 이들을 이주시키는 것이 전부였다. 시간이 지난 후 덮개를 만들어 덮었으나 그곳에서 새로운 핵분열 반응이 감지되었다는 것은 인류 최악의 핵사고는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핵발전소를 미래를 위한 대안으로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다. 현재의 핵발전소를 닫자고 하니 ‘소형모듈원자로’(SMR)이라는 것을 들고나와 오염도 없고, 사고위험도 없다며 선전을 하기 시작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소형원자로를 기후 위기의 대안이라고 이야기한 이후부터 기다렸다는 듯이 한국 정부 역시 이에 대한 연구개발비를 투자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그러나 ‘소형모듈원자로’는 아직 상용화 된 기술이 아닐뿐더러 핵발전소의 크기를 줄여놓은 것일 뿐 핵발전소가 가진 모든 성격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다. 심지어 비용적 측면에서는 기존 핵발전소에 비해 비싸다. 핵발전소가 기후위기의 대안이라는 주장은 탄소 배출량에만 국한된 이야기이다. 핵사고에 대한 위험성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2020년 여름 강력한 태풍으로 인해 ‘소외전원상실’로 핵발전소가 긴급정지한 상황은 기후위기가 초래할 핵발전소의 위기를 미리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용후 핵연료로 인한 문제도 만만치 않다. 사용후 핵연료는 핵분열로 인해 다양한 전리방사선을 내뿜는 방사성 동위원소들이 발생한다. 쉽게 말해서 엄청난 독성물질이라는 뜻이다. 심지어 그 물질 중 어떤 것은 최소한 수 만 년이 지나야 안전해지는 것도 존재한다. 그렇기에 수 만 년 이상을 외부와 단절된 상태로 안전하게 보관될 장소가 필요하다. 지구의 역사상 그렇게 오래된 암반, 어떤 지질학적 변화도 겪지 않고 단단하게 유지될 암반이 존재할런지 의문이다. 게다가 한국은 제대로 된 처리 방법에 대해 논의조차 못했다. 처분에 대해 전국민적 합의를 이루어야 할 만큼 심각한 독성물질이 지금도 매일 생산되고 있으나 해결할 방법이 없어 그저 수조 안에 보관하거나 발전소 옆에 콘크리트 건물을 지어 그 속에 보관하는 것이 전부다. 물론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탈핵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이들은 불편함을 표현하곤 한다. 땅덩어리가 좁아 태양광은 한계가 있고, 풍력은 소음이 심각하고, 수력발전을 할 만큼 대규모의 댐을 건설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전력생산 방식이 국한되어있고, 에너지원은 해외로부터 수입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들 말한다. 그럼 이 전력수요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느냐고 되묻는다. 전기가 없이 살던 옛날 옛적으로 돌아가자는 말이냐고 화를 내기도 한다. 결국 다 사실과는 거리가 있는 말임에도 이런 논리가 공론장을 떠돌기에 탈핵의 길은 참 요원하다. 핵발전이 우리의 삶을 굉장히 많이 개선 시켰다고 믿는 일종의 믿음은 이런 잘못된 상식들로부터 비롯된다. 그리고 국내 발전원 중 40%의 전력을 생산하는 석탄화력발전에 이어 핵발전이 30%로 두 번째 큰 발전원이라는 사실이 그 믿음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핵발전은 시장의 논리에 따라 성장한 것이 아니다. 세계 어느 나라도 단지 경제적 이유로 핵발전을 시작하지는 않는다. 핵발전의 발전단가에서 오염물질 처리 비용이나 사고 시 위험을 비용으로 산정하지 않을 경우 발전단가가 현저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사실로 믿는 정부는 없을 것이다. 핵무기 보유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크나큰 위험을 자초할 수 있는 핵발전소를 유지하는 것에 딱히 경제성이 없다는 것이 상식이다.
우리가 핵발전을 시작한 것이 민주적 절차를 통한 것인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핵발전을 선택한 적이 없이 강요당했다. 그리고 후쿠시마 핵사고를 본 이후 탈핵을 요구했으나 무시당하고 외면당하기 일쑤였다. 일본에서는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70% 이상의 국민이 탈핵을 요구하지만 정부는 핵발전을 그만둘 생각이 없다. 이는 한국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전기료 인상이나 블랙아웃으로 협박할 뿐이다. 그 결과 당장 지금의 청년 세대가 핵발전소와 핵폐기물 문제로 고민하고 고통받아야 할 상황에 처했다. 그리고 비용을 지불하고, 해결 문제를 떠안아야 할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탈핵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마다 기술로 이룰 장밋빛 미래를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다. 정의와 평화, 생명의 이야기는 뒷전이다. 고통받는 이들과 고통받을 이들의 삶은 사라져버린다. 부정의와 폭력이 쉽사리 자행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고통당하는 이들의 고통을 외면하기 때문이다. 월성에서는 어른부터 아이까지 모두의 소변에서 삼중수소가 검출된다. 일본에서 오염수로 해양에 방출키로 한 그 삼중수소 말이다. 기준치 미만이라 괜찮다고 말하지만 방사성 물질의 기준치는 국가가 임의로 정한 것일 뿐이다.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바라보는 시각이 변해야 한다. <핵 없는 세상을 위한 한국 그리스도인 신앙선언>의 말처럼 피폭자의 시선으로 핵을 바라보아야 문제의 해결을 위한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결론이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각 안에서 핵을 넘어 새로운 세상으로 가기 위한 발걸음을 시작해야 할 때다.

- 임준형(기독교환경운동연대 간사, 핵 없는 세상을 위한 한국그리스도인연대 사무국장)

* 한국기독청년협의회 소식지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