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이미, 위기는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

작성일
2021-04-02 11:34
조회
1070

landscape-4752269_1280.jpg

이미, 위기는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
- 텍사스 한파로 돌아본 기후위기 현상


이진형 목사(기독교환경운동연대)

지난 2021년 2월, 북극권에서 발생한 강력한 고기압으로 인해 북미지역 전역에 폭설과 한파가 몰아닥쳤다. 이 폭설과 한파로 인해 미국 전역에서 6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전기, 수도 등 기간시설의 가동중단으로 인한 엄청난 경제적 피해가 발생했다. 피해는 미국 남부 앨라배마, 오클라호마, 캔자스, 켄터키, 미시시피, 텍사스 주의 ‘선벨트(Sun-Belt)’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겨울 기온이 아무리 추워야 5~10°C 사이였던 선벨트 지역의 가구들은 대부분 난방설비가 갖춰져 있지 않았고, 사람들은 변변한 겨울옷조차 마련해두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이 지역의 기온이 영하 20도로 떨어져 미국 알래스카 지역의 온도보다 낮아지는 역대급 기상현상이 발생한 것이었다.

특히 한파 피해는 텍사스에 집중되었다. 텍사스에서만 3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500만 가구 이상에 전력공급이 중단되었다. 사람들은 간신히 눈을 뚫고 마트에서 구해온 전기 온열기를 가동하지 못해 자동차 히터를 연결하거나 장작을 지펴 악몽같은 추위를 견뎌야 했다. 텍사스는 전력 수요가 여름철 냉방에 집중되어 있어서 전력회사들은 겨울철에는 발전설비를 돌리기 위한 석유와 천연가스를 확보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미국 석유 매장량의 1/4을 보유하고 있고, 석유와 천연가스 최대의 생산기지인 텍사스에서 석유와 천연가스가 없어 발전소를 가동하지 못하는 웃지 못 할 일이 일어난 것이다. 게다가 풍력발전소와 핵발전소마저 터빈과 배관이 얼어붙어 전기를 생산하지 못했다.

텍사스 한파의 원인은 기후변화다.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한 북극의 온도상승이 북극의 찬 공기를 중위도 지역으로 밀어낸 것이다. 북극과 중위도의 대기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에 북극의 찬 공기는 일정 주기로 강해지기도 하고 약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그동안은 차가운 북극과 따뜻한 중위도 지역의 기압 차이로 인해 북극을 중심으로 극지방을 회전하는 제트 기류가 발달하여 차가운 공기가 내려오지 못하게 하는 거대한 에어커튼이 설치된 것과 같은 현상이 유지되었다. 그런데 북극의 기온이 상승하면 북극의 제트 기류가 약해져 차가운 공기가 대거 중위도 지역으로 내려오게 된다. 이렇게 북극과 중위도 지역에서 제트기류가 강해졌다 약해졌다 하는 기상 현상을 ‘북극 진동’이라고 하고 북극 진동이 강해지면 ‘양의 북극 진동 현상’, 약해지면 ‘음의 북극 진동 현상’이라고 이야기한다. 문제는 북극은 2030년 여름이 되면 해빙이 완전히 녹아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는 기후변화로 인한 기온상승이 뚜렷한 지역이고, 그에 따른 음의 북극 진동 현상이 잦아질 것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텍사스는 겨울이 되면 선벨트가 아닌 ‘아이스벨트(Ice-Belt)’가 될 지도 모른다.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가 먼 미래의 일이라 생각하고 기후변화 적응 및 대응 정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말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기후변화 현상은 지구의 지질학적인 시간 속에서도 유래를 찾을 수 없도록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텍사스 한파와 같이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경험하지 못한 기상현상은 이미 우리의 일상이다. 인간 사회가 지금처럼 지구 대기에 온실가스를 지속적으로 방출한다면 지구 생태계 전체를 회복불능의 대멸종 상황으로 만들게 될 것이다. 이제 기후변화에 대한 특단의 대책, ‘생태적 전환’이 없이는 인간 사회와 지구 생태계의 생명공동체 전체의 붕괴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이 기후위기의 현실이다. 기후변화는 자연현상이지만 그로인한 기후위기는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다. 이제는 돌려서 말할 여유가 없다. 기후위기의 현실에서 가장 큰 문제는 기후위기의 현실을 애써 부정하면서, 혹은 기후위기의 현실을 이용하여 현재의 경제체제에서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는 사람들이다.

텍사스는 미국의 에너지 산업의 심장부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석유의 41%, 천연가스의 25%가 텍사스에서 생산될 뿐만 아니라 대표적인 재생에너지인 풍력 발전에 의한 전기도 28%가 텍사스에서 생산된다. 때문에 텍사스 한파로 인한 대규모 정전사태의 원인을 두고 한파에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풍력발전은 소용이 없다는 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화석에너지 진영과 한파에 얼어붙어버리는 천연가스 공급망이 정전의 원인이라는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재생에너지 진영의 ‘그린 뉴딜’ 논쟁이 이어졌다. 하지만 문제는 화석에너지도 재생에너지도 그린뉴딜도 아니었다. 화석에너지와 재생에너지를 포함한 모든 텍사스의 에너지 시스템이 기후변화에 전혀 대응하지 못했다는 점이 문제였다. 똑같은 한파가 닥쳤어도 같은 선벨트 지역인 앨라배마, 오클라호마, 캔자스, 켄터키, 미시시피 지역에서는 텍사스와 같은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다.

이미 10년 전인 2011년에도 텍사스의 전력 시스템은 한파로 인한 순환단전의 피해를 경험했었다. 2011년 정전사태가 발생한 이후 미국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는 텍사스 정부에 한파에 대비한 발전시설의 동파방지 설비 등을 세세하게 권고했다. 하지만 텍사스 규제당국은 연방정부의 권고를 따르지 않았다. 텍사스의 전력업체들이 텍사스 정부에 지속적으로 규제 완화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에너지 자본이 가장 집약적으로 투입되어있는 텍사스는 전력사업 역시 민간에 개방되어 민간업체들이 전기를 생산해 공급해왔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수십 년, 수백 년에 한 번 올까말까 한 기상이변에 대비해 투자를 하는 것보다는 로비를 통해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훨씬 비용을 절감하는 일이었다. 나아가 텍사스 전력업체들은 비상사태를 대비해 다른 주에서 전력을 공급받는 연방정부의 정책을 배제한 채 독자적인 전력 공급망을 구축했다. 텍사스가 대규모 정전이라는 비상사태 속에서도 다른 지역의 전기를 끌어오지 못한 가장 큰 이유였다. 텍사스 규제당국은 이윤 추구에 고삐 풀린 망아지와 같은 전력업체들을 통제하지 못했고, 그 결과가 수십 명의 사상자와 엄청난 경제적 피해를 가져온 대규모 정전 사태였던 것이다.

앞으로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상황에서 에너지 자본은 과연 어떤 모습을 보일 것인가? 에너지의 생산과 유통을 독점하고 있는 기업들이 기후위기를 대비한 장기적인 투자와 대응에 나설 수 있을까? 또한 절체정명의 위기상황 속에서 에너지가 공정하게 분배할 수 있을까? 통제되지 않는 자본은 위기상황을 기회로 여길 뿐이다. 이미 텍사스 시민들은 한파 속에서 난방을 위한 전기 사용의 대가로 전력업체에 수조 원에 이르는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우리가 기후변화로 발생하는 경험하지 못한 기상현상보다 더욱 두려워해야 할 것은 기후위기를 기회로 이윤을 추구하는 약탈적인 경제체제에 길들여져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 사회가 이들을 통제하고 제어하지 못한다면 기후위기에 대한 적응과 대응 정책은 공허한 이야기일 뿐이다.

생태적 전환은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이 자신 안의 욕망을 성찰하여 우리가 상호의존의 존재임을 자각함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기후위기의 근본적인 해결책인 생태적 전환은 우리 사회의 약자와 생태계를 향한 지배와 폭력의 구조를 무너뜨리기 위한 선한 싸움의 결론일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 분을 따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기후위기 대응에 나서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위기는 제법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위기에 대한 대응 역시 제법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

(이 글은 지난 4월 1일 NCCK 사건과 신학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