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나무를 심으시는 주님

작성일
2021-03-29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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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04편의 작가는 “주님께서 심으신 나무들과 레바논의 백향목들이 물을 양껏 마시니, 새들이 거기에 깃들고, 황새도 그 꼭대기에 집을 짓습니다. 높은 산은 산양이 사는 곳이며, 바위 틈은 오소리의 피난처입니다.”라고 노래했다. 창세기 2장의 저자도 하나님은 동산을 일구시고 나무가 자라나게 하시는 분이라고 노래한다.

나무를 심는 흙투성이의 하나님이라니,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 싯귀다.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어릴 적 밭에 쪼그려 앉아 흙투성이 수건으로 땀방울을 닦으며 온갖 채소들을 심고 계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뭘 심고 계시느냐 물으면, 웃음 띈 얼굴로 “너 주려고, 너 먹을 거 심고 있지.” 하시던 그 할머니 말이다.

하나님의 손으로 심은 나무들이 자라 숲이 되고, 그 곁에 풀과 꽃과 벌레와 새들이 깃들고 크고 작은 온갖 생명들이 더불어서 함께 사는 하나의 공간이 된다. 태초에 사람도 그 동산에 살았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그 숲은 은총이 공간이고, 숲의 은총은 고여있지 않고 흘러넘쳐 강을 만들고, 땅을 적시고 바다로 흘러간다. 모든 생명은 따지고 보면 결국 숲의 은총으로 산다. 하지만 이 은총의 공간, 하나님이 손수 심고 가꾼 이 공간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참 슬프기 그지없다.

강원도 양양군은 설악산에 오색으로부터 대청봉까지 케이블카를 설치하려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경남 하동군은 지리산 형제봉에 산악열차를 비롯한 온갖 관광시설을 만드는 것을 ‘하동 알프스’ 사업이라고 이름 붙이고 추진하려 한다. 그 밖에도 에너지 전환을 핑계로 숲을 밀어 태양광, 풍력단지를 만들 뿐 아니라 심야에 남는 전기를 이용하겠다며 양수발전소를 만들겠다고 한다. 양수발전소는 상부댐, 하부댐을 만들어 남는 전기로 물을 상부댐으로 끌어올리고 전기가 부족한 시간에 물을 하부댐으로 내려보내 터빈을 돌리고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다. 이런 발전소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멀쩡한 숲이 수몰되고 만다. 이 외에도 골프장을 짓는다며 산을 파헤치고, ‘비자림로’라고 흔히 부르는 삼나무 숲에 도로를 넓힌다는 이유로 순식간에 수천 그루의 나무를 베어버렸다. 개발을 통해 막대한 수익이 생겨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숲의 훼손은 흡사 황금알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 것과 같았다. 우리가 이 글을 읽는 이 순간에도 숲은 베어지고, 산은 파괴되고 있다.

황새와 산양의 공간, 그 외에도 수많은 생명이 터 잡고 살아가는 집이어야 할 숲이 사라지는 것은 그것 말고도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바로 기후위기의 핵심 문제인 탄소의 문제이다. 기후위기에 대해 국가들이 내놓은 대응책 중에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이른바 탄소포집 및 저장(CCS, Carbon Capture & Storage)이라는 것이다. 그걸 이용해 탄소배출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한국도 이 기술의 개발을 통해 발생된 탄소의 일정 정도를 처리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 기술이 개발 중인 기술이며, 실현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라는 것이다. 반면 숲은 오래전부터 탄소를 포집 저장하고 산소를 생산하는 일종의 자연적인 탄소포집 저장소였다. 그런 숲을 파괴하는 순간 우리는 숲의 그러한 기능을 더이상 기대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숲에 저장되어있던 탄소들이 여러 가지 경로로 대기 중으로 배출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숲을 파괴하는 것은 기후 위기를 가속화시키는 행위이다.

동계올림픽 단 며칠의 스키 경기를 위해 훼손된 가리왕산은 매년 산사태를 겪고 있고, 골프장이 지어진 산 인근에선 지하수가 고갈되어 수 백 년 된 버드나무가 말라 죽는다. 숲이 사라진 곳에선 수 천 개의 하천이 말라버리고 사막이 계속 확장된기도 한다. 이 모든 일들이 기후위기를 가속화시키고, 악순환은 반복된다. 숲을 잃어버린 곳은 생명도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숲을 지키는 일은 우리의 생명을 지키는 일이다. - 임준형(기독교환경운동연대 간사)

* 월간 새가정 4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