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생태적 무기력 넘어서기

작성일
2021-10-08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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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적 무기력 넘어서기

'천 개의 아침'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마음산책, 2020년) 독서 후기


이진형 (기독교환경운동연대)

기후변화가 만든 생태적 위기로 세상은 대멸종을 향해 빠르게 달려가고 있다. 지난 1992년 리우 기후변화협약이 채택된 뒤로 줄곧 이야기된 사실이다. 그런데 다들 아무렇지도 않으니 내가 잘못된 건가? 예민해지고, 화가 가득차고, 의심하게 되고, 결국 무기력해진다. 마침내 일상생활의 소통과 관계에 장애가 발생한다. 증상은 분명하지만 아직 백신이나 치료제는 없다. ‘기후 우울’(climate grief), 혹은 ‘생태 불안’(eco-anxiety)이라고들 한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이나 생태적 위기에 대해 이야기해도 변하지 않는 사회에 깊은 무력감을 느끼게 되는 증상이다.

세상이 바른 방향으로 돌아서기 전까지는 완전한 치료는 어려울 것이다. 대신 증상을 완화시키는 방법은 있다. 아직 감춰진 보석같이 우리 곁에 존재하는 ‘창조세계의 온전성’(integrity of creation)을 몸과 마음으로 만나는 것이다. 산과 들과 강과 바다, 대자연이 아니라도 좋다. 보는 눈과 듣는 귀만 있다면 책상 위의 작은 화분에서도 하나님의 기운을 입은 생명의 섭리는 여전하다. 그리고 그 오랜 야생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책 한 권. 당신은 고귀한 존재이며 당신의 시간은 다시 있지 않을 신비의 세계라고 속삭이는 책 한 권 역시 무기력에 빠진 나의 손을 잡아준다.

메리 올리버는 서른 권이 넘는 시집과 산문집을 낸 미국 사람들이 사랑하는 문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녀는 1935년에 오하이오에서 태어나 메사추세츠 프로빈스타운에서 지내다 2019년에 플로리다에서 잡초가 우거진 모래언덕에 묻혔다. 그녀는 진정한 바닷가 습지 안내자였다. 그녀의 글에는 습지에서 살아가는 새와 물고기와 동물들과 나무와 풀에 대한 눅눅하고 포근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냥 저절로 아름다운 것들에 관한 그녀의 낮고 작은 이야기에서 사람들은 상처의 위로를, 절망의 희망을 찾았다.

밤새 내 마음 불확실의 거친 땅
아무리 돌아다녀도, 밤이 아침을
만나 무릎 꿇으면, 빛은 깊어지고
바람은 누그러져 기다림의 자세가
되고, 나 또한 홍관조의 노래
기다리지(기다림 끝에 실망한 적이 있나?).
(천개의 아침, 71쪽)

시인이 된다는 것은 깊은 영혼을 간직하기 위해 기도의 삶을 살아가는 수도사가 매일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면서 맑은 언어를 빚어내는 일인 듯하다. 그래서 진즉에 시인이 되는 것은 포기했다. 그래서 늘 우왕좌왕 상처투성이다. 그래도 메리 올리버와 같은 이가 찾아낸 지구의 거룩한 이야기에 마음 한 자락 굳어버린 아픔을 닦아낼 수 있으니 참 다행이다. 하나님께서 아직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 탓이다.

메리 올리버의 글을 읽다 어렸을 적 키웠던 강아지가 생각났다. 이름이 ‘망고’였던 검은 강아지였다. 망고는 추운 겨울날 부엌 아궁이 곁에서 잠들었다가 연탄가스를 마시고 하늘나라로 갔다. 메리 올리버의 ‘퍼시가 처음 왔을 때’를 읽는 순간 문득 망고가 떠올랐다. 나중에 강아지 하늘나라에서 다시 망고하고 들길을 뛰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갑자기. 고마워요. 메리.

(이 글은 바이블 25에 기고한 글일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