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기후 위기 시대, 예언자의 목소리를 내는 교회를 꿈꾸며

작성일
2021-09-17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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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기독교 비상행동 자탄기.jpg

회개하지 않으면 망하고 말 것이다

"너희는 망한다! 주님의 날이 오기를 바라는 자들아, 왜 주님의 날을 사모하느냐? 그날은 어둡고 빛이라고는 없다." (새번역, 아모스 5장 18절)

예언자들은 멀쩡한 나라, 아니 부유하고 강성한 조국을 향해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라고 선포했고,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헌신해야 했다. 심지어 망국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살기 위해서는 침략군에게 투항해야 한다"고 선포하는 이도 있었고, 곧 도래할 끔찍한 결말을 대중에게 전해야 하는 상황이 고통스러워 자기 운명을 저주한 사람도 있었다. 예언자들은 포로가 돼서도 마른 뼈가 살아나는 기적을 전해야 했고, 불타고 잘려 버린 그루터기에 남은 희망을 이야기해야 했다. 그들은 주변을 둘러싼 국제 정세를 읽을 줄 알았고, 그 속에 놓인 이스라엘의 비극적인 운명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런 운명에 처한 이유가 이스라엘이 스스로 저지른 죄악 때문이라는 사실에 애타게 아파했다.

최근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6차 보고서 중 제1실무그룹 보고서가 발표됐다. IPCC는 이 보고서를 제54차 총회에서 승인했다. 2018년에 나온 '1.5℃ 특별 보고서'의 내용도 대중들에겐 아직 낯설고 어려운데, 이번 보고서는 사실상 '1.5℃ 특별 보고서'의 결론보다 더 우울한 전망을 담고 있다. 앞선 보고서에서 경고했던 시기보다 약 10년가량 위기의 시점을 앞당겨 전망했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극지방 빙하가 녹고 해수면 상승이 일어나며, 해마다 발생하는 극단적 기상이변 현상이 더 자주 발생하고, 지금 멈추지 않는 한 이 변화는 돌이킬 수 없다고 전망했다. 과학자들은 데이터를 통해 결과를 추론하지만, 실제 결과는 예측할 수 없는 변수들로 추론·전망보다 더 심각한 경우가 허다했다. 이러한 경고가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다 망하고 말 것"이라는 예언자들의 목소리처럼 들리는 것은 과연 우연일까?


기후 위기,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

녹색연합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8월 12~19일 전국 만 14세 이상 69세 이하 국민 1500명을 대상으로 기후 위기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했다(표본오차 95% 신뢰수준 ±2.53%p). 다가올 대선의 중요 의제로 기후 위기를 다뤄야 한다는 응답이 91.1%에 달할 만큼 기후 위기는 이미 사람들의 피부에 와닿는 중대한 문제가 됐다. 응답자 중 97.7%가 기후 위기를 '심각'하게 느끼고 있으며, 80.1%는 이 문제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당장 일어나고 있는 일로 인식하고 있다고 답했다.

기독교인들의 위기의식도 특별히 다르지 않다.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 2019년 10월 31일 발표한 '2019년 주요 사회 현안에 대한 개신교인 인식 조사'에 따르면, 기독교인·비기독교인을 막론하고 환경문제에 대한 위기의식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게다가 교회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을 묻는 문항에 응답자 중 27.8%가 '환경 운동에 대한 직접 참여'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기후 위기가 사회 주요 의제로 부상하기 전인 2019년에 이뤄진 조사였음에도, 많은 기독교인이 교회가 당면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운동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말이다.

이런 결과가 '한국교회 2050 탄소 중립 선언'을 만들어 내는 원동력이 됐고, '기후위기기독교비상행동'이 출범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아직 정작 중요한 일들은 시작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신앙을 바탕으로 사회 곳곳에서 활동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에 비해, 교회가 기후 위기 관련 운동에 직접 나서서 활동하는 부분은 미약하다. 기후 위기 타계를 위한 노력이 일회성 행사를 넘어 신앙생활 전반의 핵심 주제로 이어지는 일 역시 드물다.


예언자의 외침이 필요할 때다

기후위기기독교비상행동은 2021년 5월 12일부터 매주 수요일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고, 교계에 행동을 촉구하는 피켓 시위를 시작했다. 종로5가에서 진행하는 피케팅 문구는 "기후 위기 대응에 한국교회가 앞장섭시다", "기후 위기 대응, 그리스도인의 책임입니다", "기후 위기 시대, 선언 넘어 행동으로! 교단은 기후 위기 대응 기구 설치하라!" 등 교회에 책임·역할을 요구하는 것부터, "지금 당장 정의로운 전환이 필요합니다", "석탄 화력 중단과 정의로운 전환을!", "지금 당장 탈석탄! 탈핵!", "기후 위기, 미래 세대가 아닌 바로 우리의 미래!" 등 사회를 향한 메시지까지 다양했다. 문구의 다양성과는 별개로 기후 위기를 염려하는 기독교인들의 마음만은 하나였다.

기후위기기독교비상행동은 매월 한 차례 수요 기도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5월에는 P4G(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국제 정상 회의)를 앞두고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앞에서 단식 농성하던 이은호 녹색당 기후정의위원장을 찾아가 첫 기도회를 진행했다. 6월엔 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 주관하에 '자전거 탄 기도회'라는 제목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한국기독교장로회, 기독교대한감리회 총회 본부를 자전거를 타고 방문해 '기후 위기 대응기구 설치' 등의 요구를 담은 서한을 전달했다. 7월엔 서울제일교회가 주관하여 기도회를 진행하였고, 8월엔 기독교환경운동연대(기환연)가 충남 당진 석탄 화력발전소 앞에서 기도회를 했다.

현재는 '2050 탄소 중립 선언'을 발표한 교단을 비롯한 모든 교단 본부에 기후 위기 대응 기구를 설치하라는 내용을 담은 서명운동도 진행하고 있다. 기후위기기독교비상행동의 모든 운동은 기후·생태 위기를 우리 신앙의 근간인 지구라는 큰 공동체의 위기로 인식하는 신앙에 기반한 예언자적 운동이다.

예언서는 성서에서 위기의 시대를 살아 낸 이들의 목소리가 가장 잘 담겨 있는 책이다. 다들 알다시피 위기가 초래된 이유는 당대를 살아가던 이들의 죄악이고, 그 결과는 징벌과 멸망이었다. 예언자들은 회개하고 돌이키면 다가올 징벌을 피할 수 있다고 수없이 경고했지만, 당대엔 사실상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들은 위기가 목전에 다가와 있는 순간까지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예언서를 후대에 읽는 우리는 결론을 이미 알고 있으므로, 경고에 귀 기울이지 않는 당대 사람들을 답답하게 여길 수 있다.

그러나 후대 인류가 기후 위기를 살아 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본다면, 비슷한 답답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이대로라면 파국이 눈앞에 있는데도 눈치채지 못한 선대 인류라는 오명을 쓰게 될 것이다. 이 시대의 예언자들이 수없이 경고하며 생태적 전환과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데도, 우리는 욕망의 수레바퀴를 멈추지 못하고 스스로 저지른 죄악이 불러올 징벌과 멸망으로 달려가고 있다.

신학교에 입학하면 '선지 동산'이라는 다소 생경한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신학교가 예언자들을 기르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만일 신학교가 정말 그러하다면, 이 기후 위기의 시대에 그들이 목회하는 현장인 교회에서 목회자들은 예언자 하박국처럼 단 위에 올라서서 불의를 성토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려야 하는 것 아닐까? 예언자 아모스처럼 거짓된 풍요에 취해 있는 세상을 향해 "너희는 망한다!"고 외쳐야 마땅하지 않을까? 예언자 요엘처럼 재난을 보며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고 회개를 요구해야 하는 것 아닐까? 기후 위기 시대를 살아 내는 교회는 예언서를 다시 집어 들어야 한다.

교회는 부패한 권력자에 맞서 싸우고, 잘못된 문화와 신념 체계를 부수며, 태연하게 죄악을 저지르는 이들을 향해 돌이키라고 소리쳐야 한다. 또한 모두가 절망을 겪을 때는 심판을 외치던 그 입으로 마른 뼈가 다시 살아나는 기적과 불타고 잘린 그루터기에 남은 희망을 이야기해야 한다. 교회가 먼저 거짓된 풍요를 벗어던지고 가난해지는 길을 향해 나아가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기후위기비상행동은 다가오는 9월 25일 '지금 당장 기후 정의'라는 주제로 대규모 캠페인을 기획하고 있다. 이미 2019년 9월 20~27일 185개국 760만 명이 참여한 사상 최대의 '기후 파업(climate strike)'과 연계해 9월 21일 국내 13개 도시에서 7500명이 함께한 기후 행동을 진행한 바 있다.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이듬해인 2020년 9월을 '집중 기후 행동의 달'로 잡아 검색어 캠페인 등을 실시했고, 올해에도 집중 캠페인을 실시할 예정이다. 기후위기기독교비상행동도 이날에 맞춰 행동을 기획하고 있다.

기환연은 2020년 겨울 '그린 엑소더스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한국교회에 '기후 주일' 성수를 제안했다. '기후 주일'은 세계적으로 기후 행동이 급격히 번져 갔던 2019년 9월을 기념해 한국교회도 기후 위기 상황에서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는 날로 삼자는 제안이다. 마침 매년 9월 첫 주~10월 첫 주는 세계 교회가 '창조절'로 지키는 기간이기도 하다.

기후 주일을 이야기할 때 기환연 사무국이 상상했던 모습이 있다. 수만 곳에 달하는 한국교회의 기독교인들이 모두 거리에 나와 각자의 목소리로 기후 위기에 대해 말하는 모습이었다. 나라가 뒤집힐 만큼 거리에서 시끄럽게 외치고, "우리가 곧 죽게 됐다"며 변화가 당장이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모습이었다. 아울러 교회가 가진 영향력을 영혼까지 끌어모아 미적거리는 정부·기업을 압박하는 모습을 꿈꿨다.

작금의 상황은 기후 위기를 중심으로 세상의 모든 것이 재편돼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나오미 캠벨의 저서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열린책들)처럼 교회 역시 기후 위기를 기준으로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 오늘 당장 기후 위기로 죽어 가는 이들을 변화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의 목소리는 그들을 위한 것이 돼야 한다. 교회는 항상 변두리와 성문 바깥 존재들을 위한 공동체였기 때문이다.

임준형 / 기독교환경운동연대 활동가

[출처: 뉴스앤조이] 기후 위기 시대, 예언자의 목소리를 내는 교회를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