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창조의 계절

작성일
2021-08-31 13:25
조회
1020

clouds-1834809_1920.jpg

창조의 계절

1989년 동방 정교회의 총대주교는 ‘피조물을 위한 기도의 날’을 선포했다. 9월 1일부터 시작되어 10월 4일까지 이어지는 이 기간을 세계교회가 ‘창조절’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지키는 전통은 ‘피조물을 위한 기도의 날’로부터 비롯되었다. 전통적 교회력에서는 성령강림 후 주일이 길게 이어지는 기간이다. 그 중 다섯 주를 특별히 ‘창조절’로 지키게 된 것이다. 창조절은 산업화 이후 벌어진 생태계 파괴와 생물다양성 상실과 멸종, 지구 자체가 지속 불가능한 상황으로 가고 있는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모든 이들에게 그리스도교가 내놓은 대답이라고 할 수 있다.

2020년의 창조절 주제는 ‘지구를 위한 희년’(Jubilee for the earth)이었다.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를 비롯해 다양한 교단 및 단체가 참여하여 자료집을 내기도 했다. ‘지구를 위한 희년’ 자료집은 성서의 희년처럼 해방과 쉼을 통해 폭력적으로 착취당하던 모든 이들, 사람뿐 아니라 모든 피조물과 땅에 이르기까지 해방과 쉼을 얻는 생태적 전환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2021년 창조절의 주제는 ‘모두를 위한 집(A home for all)’이다. 아마도 ‘모두를 위한 집’은 지구를 일컫는 말일 것이다. 우리가 하나의 집에 살고 있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집인 이 지구라는 공간에 우리를 살게 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자는 말이다.

가끔 이런 상상을 하곤 한다. 기후위기가 삶을 앗아가는 공간에서 우리는 어떤 하나님을 고백할 수 있을까? 내 이웃이 기근으로 인해 굶어 죽고, 때론 폭우에 실종되고, 혹은 온열 질환으로 수백 명이 사망할 때, 그들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이해될까?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선선한 바람한 점 불어오지 않는 단칸방에서 한낮의 뜨거운 열기 뿐 아니라 열대야를 나야하는 이들에게 과연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 곡식이 메말라 죽어버리고, 땅은 윤기 하나 없는 푸석푸석한 모래가 된 광경을 보는 농부들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 양떼를 이끌고 이곳저곳을 헤매지만 풀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사막으로 변해버린 광경을 목격한 유목민들에게 하나님은 어떤 존재로 비춰질까? 그리고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전염병이 창궐하여 우리의 삶을 멈출 때 과연 우리는 어떤 하나님을 고백하고 있는가?

물론 삶에는 수많은 질곡이 존재하고, 폭염, 폭우, 가뭄, 홍수, 기근과 사막화, 전염병의 창궐이 세상에 없던 일은 아니었다. 역사에는 이런 일들이 존재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매해마다 전 지구적 현상으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상황은 인류가 처음 겪는 일이라는 것이 과학자들의 이야기다. 이런 현상들이 지속되어 우리의 삶의 터전과 토대를 송두리째 앗아갈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일은 단순히 그것에 그치지 않는다. 에스키모인이라고 불리던 알래스카의 이누이트족은 기후위기로 인해 삶의 방식을 지탱하던 터전을 잃어버린 것으로 인해 심각한 우울증을 겪었다. 그 현상을 연구한 이들은 ‘생태 비탄’ 혹은 ‘생태 슬픔’으로 이 현상을 명명하고 설명했다. 심각한 우울증을 겪다가 자살에까지 이르는 일이 생겼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했던 모든 경험은 사실 지구를 통한 경험이다. 하늘의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를 보라 하셨으나 새도 없고, 백합화도 없다면, 때를 따라 내리는 비가 은총이라고 말하지만 그런 것을 본 일이 없다면 우리는 성서를 보아도 깨닫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창조절’을 정하여 지키는 이유는 이 관계를 다시 깨닫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지구를 위한 우리의 행동은 우리의 신앙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다.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 구원의 역사가 창조세계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믿는 이들에게 지구는 믿음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창조절은 ‘우리의 모두의 집’ 지구를 묵상하며 함께 지구를 지키는 행동에 나서보는 것이 어떨까?

- 임준형(기독교환경운동연대 간사)

* 월간 새가정 9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새가정 9월호에 실린 내용이 조금 실수가 있어 수정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