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나무처럼 살고 싶다

작성일
2021-07-30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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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처럼 살고 싶다

<다시, 나무를 보다> 신준환 글 사진, 알에이치코리아, 2014년, 서평

무더위. 철없는 에어컨이 있기 전, 사람들은 나무를 찾았다. 지친 사람들은 나무에 기대어서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나무는 크고 높고 때로는 거룩했기에 나무 아래의 사람들은 평화로웠다. 밤의 나무 아래는 멀티플렉스였다. 할머니의 쌈지 속에 감춰져있던 오랜 이야기가, 서로의 마음에만 새겨야만했던 애틋한 사랑이, 걸쭉한 막걸리로 풀어낸 미움과 설움이 나무 아래에서 하염없이 이어질 때, 나무는 슬며시 달과 별을 붙들어주었다. 역사, 문화, 문명, 종교 거창한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기 훨씬 오래 전부터 사람들에게 나무는 그대로 나의 존재의 일부였다. 우리는 늘 나무를 보았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나무를 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불안하고, 외롭고, 허전하며, 아프다. 다시, 나무를 볼 시간이다.

‘다시, 나무를 보다’는 나무에 대한 책이다. 저자 신준환은 산림과학원, 국립수목원에서 평생을 나무와 함께한 나무와 숲을 연구하는 학자다. 그는 1992년 리우 국제환경회의에서부터 기후변화협약, 생물다양성협약, 사막화방지협약이 어렵사리 체결되는 과정을 한국 정부의 대표로 참여했다. 그는 기후위기 속에서 장차 나무가 겪어야 할 운명을 누구보다 먼저 깨달았을 것이다. 사랑하는 존재의 수난의 예언을 신탁받은 이의 운명이란. 이 책은 30여 년을 오직 나무만을 연구해온 저자가 나무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넘어서 나무에 대한 경이와 신비, 존중을 한 문장 한 문장 가슴으로 새겨낸 거룩한 책이다. 군말이 더 필요 없다. 이 책의 평범한 글 몇을 옮겨본다.

“나무가 죽는다고 그냥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도 죽는다고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많아지고 더 깊어진다. 한 알의 밀알이 썩지 않으면 수많은 밀알로 자랄 수 없듯이 나 하나의 죽음이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물음을 던진다. 그리고 가슴 깊이 새겨진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충격을 주며 가슴 속에 새로운 무늬를 새긴다. 가시같은 미움을 받으며 살았다고 해도 좋다. 스스로 양심에 거리끼지만 않게 마지막을 정리하고 죽는다면, 자신이 죽은 후 그 가시는 그 사람의 가슴에 서서히 진주를 영글게 할 것이다.” (99쪽,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

“숲은 우주에 피어오르는 안개이다. 나를 감추고 다시 나를 나타나게 해주는, 자신이 변함으로써 시시각각 나를 다르게 보여주는 안개. 숲에 난 길은 나를 울려내는 소리이다. 숲에 있는 온갖 길이 다 소리이다. 벌레가 기어가는 길, 새가 날아가는 길, 동물이 뛰어가는 길, 낙엽이 굴러가는 길, 나의 눈이 더듬어 가는 길, 그래서 길은 소리가 되어 온 우주로 퍼져나가고, 소리는 길을 모아 나의 동굴로 울려준다. 이것이 숲에서 보고 듣는 우주이다.” (145쪽, 우주를 관통하는 힘)

“나무는 오래 될수록 자기 속을 비운다. 짝이 맞는 딱따구리를 만나면 고목은 몸통으로 울리는 악기가 된다. 몸통으로 울리는 악기도 구멍에 따라 소리가 다르다. 그 구멍도 비었다고 아무것이나 막 들어와 사는 것이 아니다... 이렇듯 속을 비우지만 뜻을 비운 것은 아니다. 그래서 고목은 영험한 것이다... 아무런 실속이 없고 허탈할 때에는 오래된 고목을 보자. 나는 누구에게 자리를 내어줄 수 있는지. 나는 누구에게 내 속을 내어줄 수 있는지. 그런 지혜를 키울 수는 없는지. 허탈하다고 생각될 때는 고목이 구멍을 키우듯 지혜를 길러보자.” (303쪽, 들리지 않는 것을 듣다)

그나저나 산림청은 최근 탄소중립을 위해 탄소흡수 효과가 떨어진 30년생 나무는 베어내고 탄소흡수를 위해 어린 나무를 심겠다고 한다. 그보다는 탐욕에 눈이 멀어 나무를 배신한 산림 관료들을 쫓아내는 것이 탄소중립에는 훨씬 효과가 있을 것 같다. 지구가 사라지는 순간까지 나무는 나무의 일을 할 것이다.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했던 지구에 생명을 북돋는 일 말이다. 결국 나무가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그러니 다시, 나무를 보자.

(이 글은 바이블25 오늘의 책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