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황사와 부활

작성일
2011-07-18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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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와 부활

구함미정 / 기독교윤리학 박사, 목원대·협성대 강사

시인 유하의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라는 제목의 연작시 중에서 아홉째 편에 보면 이런 문구가 있다: "만약 10억이 넘는 중국 인민들이 한꺼번에/ 천안문 광장을 자가용을 타고 질주한다면, 동시에 먹고 싼다면/ 무쓰를 처바른다면 지구는 어떻게 될까 / 자금성 노자의 후예들이 素素하게/ 虛의 자전거 바퀴나 굴리는 덕택에/ 압구정동 가득 자동차 바퀴가 넘쳐난다?"

'압구정동'으로 상징되는 천박한 소비문화를 질 높은 삶의 모델인 양 여기며 그 쪽으로 가깝게 공간 이동을 하기 위해 아둥바둥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사실상 중국 사람들이 고맙고도 미안한 존재다. 그들 다수가 '노자의 후예' 답게 자전거를 애용하는 덕분으로 그나마 지구의 파산선고가 유보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12억이 넘는 중국인 모두가 우리와 같은 소비수준으로 산다면 이 지구는 당장 부도가 나고 말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중국으로부터 황사가 찾아 왔다. 노란 안개가 낀 것처럼 뿌연 흙먼지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 닥쳤다. 이번 황사는 미세먼지 농도가 평소의 20배로 사상 최고 수치라고 한다. 미세먼지 경보제를 실시하는 미국의 경우, 미세먼지의 하루 평균농도가 ㎥당 350㎍을 넘으면 '위급' 경보를 내려 모든 사람의 바깥 활동을 금지하고, 특히 호흡기나 심장질환자, 노인과 아이들은 반드시 실내에 머물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런데 사상 최악의 황사바람이 전국을 강타한 지난달 21일의 경우, 최고치를 보인 서울 한남동에서는 ㎥당 2046㎍의 농도가 계측되었다니 그 심각성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가시거리가 크게 떨어져 자동차 추돌사고가 줄을 이었다. 서울·경기·대전·충북 등지의 유치원과 초등학교는 임시휴교에 들어가기도 했다. 떡볶이나 어묵 등을 파는 길거리 노점상들도 울상을 지으며 임시휴업을 해야했다. 그러고 보니 해마다 이맘때면 눈이 쓰리고 목이 따끔거려 병원에서 살다시피 하는 나도 황사의 피해자인 셈이다.

모 방송국 기상캐스터가 황사보도를 하던 중 "이웃도 잘 만나고 볼 일"이라며 비아냥거리던 것이 생각난다. 한편으로는 수긍이 가기도 하지만, 경솔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웃을 잘못 만난 탓에 내가 불편하다는 논리는 철저한 이기심의 표현으로서, 결국 나 역시 이웃에게 별로 좋은 이웃 노릇을 못하고 있음을 반증할 뿐이다.

이번 황사가 극심한 까닭은 지난 겨울 동안 중국 대륙의 신장자치구·네이멍구(내몽고)·몽골 지역 강설량이 예년의 절반밖에 되지 않은 상황에서 고온건조한 찬바람(편서풍)이 몰아닥쳐 일어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이고 근시안적인 이유일 뿐이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지구적으로 점차 온난화 되어 가는 기후변화와, 지역적으로 이미 50년대 대약진운동 시기로부터 농지개간을 위해 숲과 풀밭을 밀어버린 무분별한 산림 개발에 있다고 본다. 누군가 경고하지 않았던가? 숲이 사라지면 그 다음은 우리 차례라고. 전문가들은 중국 국토의 27%가량이 이미 사막화되었으며, 해마다 서울 넓이의 네 배가 넘는 2,460㎞씩 사막이 늘어나고 있다고 진단한다. 몽골의 경우에는 국토의 90%가 사막화 위기에 처해 있
는 실정이다. 이번 황사로 그들 지역의 1억 3천만 인구와 28만 5천㏊의 농경지, 그리고 236만㏊의 초지가 엄청난 재난을 당했다. 우리의 불편과 피해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러고 보면 환경오염은 역시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을 최초의, 그리고 최대의 희생자로 만드는 것 같다.

그런데 최근 일본 문부과학성 산하조직인 '지구 프런티어 연구시스템'에 따르면 황사에는 부정적인 영향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연간 3억 톤에 이르는 황사는 알칼리성 칼슘 등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서 산성비를 중화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 나라 서해(황해)에 내려앉는 황사는 식물플랑크톤을 다량 증식시켜 지구온난화를 일부 막아준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도 단순하게 넘길 바가 못된다. 과거의 황사와 달리, 요즘 황사에는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면서 도시개발에 열심인 베이징을 위시하여 중국 동부 공업지대의 오염물질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심각성을 뒤늦게 깨달은 중국 정부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겨냥하여 국토조림사업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반가운 소식임에 틀림없지만, 어디 나무를 심는 일이 그리 호락호락하던가? 효과를 보려면 오랜 인내가 필요하리라.

국경없이 넘나드는 공해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역시 국경을 넘어 연대하는 길밖에 없다. 한-중-일 환경장관회의에만 맡길 일이 아니다. 진정한 변혁은 아래로부터 일어나야 한다. 한-일 양국의 월드컵 공동개최를 앞두고 세계의 시선이 동아시아 문화권에 쏠리고 있는 이 마당에 황사문제를 범시민운동, 범문화운동까지 끌고 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복음서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우리로 하여금 이웃의 개념과 범위를 새롭게 재정의하고 넓히도록 도전한다는 점에서 교훈적이다. '누가 내 이웃인가?'를 따지기보다는 '나는 누구의 이웃이 되고 있는가?'를 자문하게 만드는 데 그 비유의 매력이 있다. 참된 이웃이 되려면 지역적, 인종적, 계층적, 성적 장벽을 허물고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말 못하는 자연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사실상 자연이야말로 우리 가운데 '가장 가난한 자'가 아닌가? 오늘, 부활하신 예수는 우리에게 되물으신다.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살해당한 나무와 풀과 꽃에게 선한 이웃이 되어 주고 있느냐고. 아! 부활을 기다리는 건 인간만이 아니다(이 글은 2002년 본회 회지에 수록했던 글을 옮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