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현대생태신학자들 연재를 시작하며 (이정배)

작성일
2011-07-18 13:44
조회
3805
현대 생태신학자들(1)
-그들의 성서해석을 중심으로-

1974년 나이로비에서 열렸던 세계교회협의회 모임을 통해서 환경신학, 생태학적 신학이 태동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1960년대초 인류의 진보신앙에 의구심을 품었던 로마클럽의 경고를 1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 세계교회가 받아들인 것이다.

폰 라드의 제자였던 붸스터만의 창세기 주석서는 성서를 생태학적 관점에서 읽어갈 수 있는 눈을 갖게 하였다. 종래의 구속사 중심의 신학이 역사만을 하나님의 계시지평으로 이해하고 창조를 역사해석의 도구로 사용했다면, 생태학적 성서읽기는 자연을 하나님 이해의 원지평으로 삼았으며 그로써 자연 없는 창조의 신학적 한계를 지적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독일을 비롯한 영미 신학계에서는 생태학적 신학 및 윤리 를 주제로한 엄청난 연구물들을 쏟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생태학적 신학 및 성서읽기가 동일한 방향성만을 띤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이천년신학 전통을 중시하느냐 아니면 오늘의 당면 생태계 위기 상황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또는 생태계 위기의 원인을 기독교 종교 속에 내포된 인간중심주의로 보느냐 아니면 타락된 인간의 본성에서 찾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위기의 극복을 위해 인간중심적 세계관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과 인간의 청지기성 회복을 대안으로 하는 주장, 그리고 오늘날의 기술과학을 남성 원리의 산물로 보고 오로지 자연과 여성의 동(同)근원성을 말하는 생태학적 여성학의 시각에서만 자연의 치유가 가능하다는 주장이 공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뿐 아니라 성서전통을 가부장적 지배 이데올로기의 산물로 보는 극단의 여성신학자들은 기독교 전통밖에서 고대 및 동양적 전통에서 새로운 영성이 발원될 수 있음을 믿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창조의 보전을 무로부터 창조교리와 삼위일체 구조 속에서 생각하려는 몰트만과, 이 두 교리를 포기해야만 전 생명체를 존속케 하는 자연신학이 가능하다고 보는 미국내 과정신학자들이 있으며, 인간의 청지기성만 회복하면 생태계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 카톨릭 신학자 지틀러가 있는가 하면, 전 우주만물은 하나님 몸으로써 세계관적으로 새롭게 이해해야만 된다고 보는 여성신학자 멕훼이그가 있다.
또한 종래의 종혁신학이 계시를 성서(문자)에만 한정시킴으로 해서 전 자연이 하나님의 영역임을 망각했다고 비판하며 자연이야말로 원은총임을 말하는 매튜 폭스, 그리고 자연을 하느님의 녹색은총으로 보며 하나님의 십자가 사건인 적색은총은 녹색의 의미가 사라질 때 공허하다고 보는 맥 다니엘 등의 신학자들이 존재하고 있다. 원죄를 교만으로서가 아니라 세계 내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과 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는, 즉 필요 이상의 물질을 쓰고 살아가는 인간의 태도에서 기독교 자연신학을 창출해내려는 여성신학자 로즈마리 류터 등이 생태학적 신학의 선구자들이다.

물론 이들의 새로운 성서읽기, 곧 생태학적 성서해석이 상호 다르기만 한 것은 결코 아니다. 이들은 모두 자연을 지배해 왔던 인간을 탈중심화 시키고 자연의 치유를 위한 존재로서 인간을 재중심화 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생태신학자들간의 차이점을 부각시켜 그들의 핵심요지를 분명히 드러나게 하는 일은 중요하다. 앞으로 몇번에 걸쳐 이들 신학자들의 생태학적 성서해석을 소개하고 비판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