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마침내 자연이 성난 얼굴로 ...

작성일
2011-07-18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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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07


마침내 자연이 성난 얼굴로 돌아왔다

유미호 / 기독교환경운동연대 기획실장

요즘 <다크 콜로니>, <박쥐>, <프릭스> 등 변종괴물영화들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텍사스주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과학자의 욕심으로 탄생한 고도의 지능을 가진 변종 박쥐 떼의 습격을 그린 <박쥐>나, 식물의 유전자 변형 실험과정에서 돌연변이를 일으킨 쥐 떼의 재난을 그린 <다크 콜로니>, 외진 폐광촌 마을을 배경으로 산업폐기물로 인해 수백배 커진 돌연변이 거미들이 인간을 공격하는 <프릭스>가 그것이다. 이들 공포영화들은 우리가 자연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공포를 완벽하게 영상으로 그려내고 있다. 특수효과의 발달 덕분이라지만, 이런 영화들이 자꾸 만들어지는 또 다른 이유는 유전공학과 환경오염의 결과로 보여지는 자연의 역습이 이미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사실 영화보다 우리 눈 앞에 다가오
고 있는 환경재난의 조짐들이 더 실감나는 현실로 다가와 있다.

인간에 대한 동물들의 반란환경재난의 조짐들은 이미 이곳 저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사스가 돌더니 이번에는 광우병, 조류독감 등 동물로부터 인간에게 감염되는 질병들이 판을 치면서 우리의 삶이 위협받고 있다. 광우병에 걸린 소를 통해 감염되는 것으로 알려진 변형 크로이츠펠트 야코프병과, 사향고양이가 감염원으로 지목되는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닭, 오리 등 가금류에 의해 감염되는 조류독감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특히 최근 사망한 베트남의 자매 조류독감 환자는 아직 추론수준이긴 하지만 인간 대 인간의 감염에 의한 치명적 변종 바이러스의 출현을 경고하며 우리 사회를 휘젓고 있다. 조류독감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야생 조류의 장에서만 기생할 때는 큰 질명을 일으키지 않으나 야생 조류의 변을 통해 닭, 오리 등 가금류에 감염되면 호흡기는 물론 전신으로 퍼져나갈 수 있는 형태로 자신을 변질시켜 심각한 질환을 일으킨다. 실제로 1956년과 57년 홍콩과 중국 남부에서 발생한 오리독감은 인간독감과 결합해 인간에게까지 전염시킨 예가 있다. 게다가 이 변종 바이러스는 그 자체로도 위협이지만 인간에게 감염되어 인간끼리 전염시키게 되는 또 다른 변종 바이러스를 만들어낼 경우 치명적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인간
끼리 감염될 경우 수백만명의 사망자가 날 수 있어 그 피해는 지난 해 세계를 강타했던 사스와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한다(사스는 전세계 8,000명에게 감염돼 이중 800여 명을 죽게 했지만, 97년 홍콩에서 발생한 조류독감은 18명의 감염자 중 6명이 죽어 30%의 치사율을 보였다).

석유문명, 도시에 점거당한 인간의 삶
지난 50년간 석유문명이 주는 편리한 삶에 취해, 우리는 자연이 주는 여러 가지 경고들에 대해 무감각하게 살아왔다. 그리고 이른바 석유문명이라는 도시 소비문화의 삶은 석유를 많이 써야 그만큼 경제가 성장하고, 그 성장은 물량의 풍요와 보다 편리함과 보다 즐거움을 가져다준다는 등식으로 이어져 극도의 이기주의와 개인주의 가치체계를 만들어냈다.
최근 한 방송사가 내보낸 '환경의 역습' 프로그램은 우리의 삶에 가장 기본적인 숨쉬고 먹고, 자고, 이동하는 기본생활이 얼마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지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자동차, 도로, 건물로 넘쳐나는, 현대인의 90%가 살고 있다는 도시의 공기의 경우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만 보더라도 미세먼지로 연간 1만 1천여 명 이상 조기 사망하고 있다는 보고다. 각종 먹을거리를 비롯해 의류와 침구, 벽지와 집안의 마감재, 화장품과 세제, 살충제와 플라스틱제품, 전자제품, 의약품 등의 원료로 쓰이는 각종 화학물질이 인체에 심각한 해를 미친다는 증거들이 속속 제시되었다. 이들 화학물질이 몸 안으로 들어가면 성기능이나 생식기능, 면역기능을 파괴해 결국 종의 소멸(?)을 재촉할 수도 있다. 남자의 정자수가 50년 전과 비교해 절반으로 줄어들고, 유방암 자궁암 전립선암 등 생식과 관련한 암 발생률이 눈에 띠게 늘어난 것이 그 증거다.
사실 우리는 이제 석유와 무관하게 한 순간이라도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 사람의 삶의 근원인 밥조차도 태양에너지가 아닌 석유에너지에 의존하고 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하나님이 하늘의 태양을 끄지 않는 한 식물은 자라고 동물도 살아가기 마련이다. 그것이 하나님 창조의 신비요 자연의 질서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 대부분의 농사는 석유가 없으면 속수무책이니 ….

지구온난화로 대표되는 환경의 역습
지구 곳곳에선 지구온난화 등으로 기후가 이상 현상을 보이고 있다. 지구의 온도가 전반적으로 상승되는가 하면, 가뭄지역이 커지는 동시에 국지적으로는 홍수가 일어나는 등, 과거와 달리 매우 심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전국적인 집중호우로 큰 피해를 입는 등 기상이변의 예외지대가 아니다. 또 지난 100년간 해수면은 10Cm 이상 높아졌고, 북극해의 빙산 두께는 지난 40년간 40%나 줄었다. 태평양의 조그만 섬나라는 이미 지구상에서 사
라졌다. 불과 해발 2m의 투발루에 살고 있던 생명체들은 바닷물에 잠겼고, 그곳에 살고 있던 1만여 명의 국민들은 이웃나라 뉴질랜드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우리가 가정과 공장, 직장에서 너무나 많은 이산화탄소를 방출해 지구를 뜨겁게 달구어 해수면을 상승시켰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기후변화는 경작 환경의 변화로 인한 식량난, 물부족, 전염병, 식생변화, 생물종 다양성의 침해, 해안 지역 문명의 파괴 등 지구 생태계를 광범위하게 뒤흔들고 있다. 상황이 이럴진대, 사람들의 위험신호를 감지하는 생태감수성은 개인의 탐욕과 산업문명, 자본의 논리 속에 둔감해져 있다. 만약 우리가 지금 당장 편리함과 풍요만을 쫒는, 이른바 석유문명에서 돌아서지 않는다면 오히려 한참 퇴보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돌아설 때 돌아서는 것이 진보'라 하지 않던가.

새로운 희망을 흙(자연)에서 찾는다
본래 자연은 하나님 안에서 순환하며 스스로 정화하는 능력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석유문명, 도시에 의해 점거당한 우리의 삶은 자연의 자연스런 순환을 단절시키고 그 수용범위를 훨씬 넘어섰다. 지구의 수용능력은 61년 70%에 이르던 것이 99년에는 120%를 넘어섰다. 이는 우리가 해마다 1.2개의 지구를 소비하고 있다는 얘기인데, 이것은 자신의 집을 불태우면서도 태평하게 잠을 자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지금 지구의 숲은 2.4% 줄었고, 포유류의 25% 이상과 조류의 12%가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2030년까지 비상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면, 육지의 3분의 2가 도시확장과 도로개발로 인해 커다란 환경피해를 입게 될 전망도 나와 있다.

하지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희망은 흙에서 찾을 수 있다. 생태계 위기가 창조의 근거인 흙에서 분리된 것에서, 그리고 그를 파괴하고 약탈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듯 다시 흙에서 출발해야 한다. 유대인의 지혜가 담겨있는 탈무드에 보면 "잘 살아라. 그게 최대의 복수다"라는 말이 있다. 자연의 흐름을 왜곡한 인간에 대한 자연의 복수극처럼 보이는 환경재난에, 우리가 다시 복수(?)하는 길은 우리가 흙에서 났음을 자각하고 흙에서 아주 잘 사는 것이다.

흙(자연)은 병든 생명을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양계장의 병든 닭들도 야산에 풀어놓으면 몇 달 뒤면 정상으로 돌아온다. 이것은 흙으로 만들어진 생명이 흙을 통해 치유를 얻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흙을 살리고 개울을 살리며 풀벌레와 어울리는 상생(相生)의 삶을 선택하자. 이제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자연의 유산이 모든 생명에 동일하게 주어진 것이라 자각하고 낭비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희망은 있다. 자연을 이용하기를 꿀벌이 꽃가루를 채집하듯 하자. 꿀벌은 꽃의 아름다움이나 향기를 다치는 일 없이 자연을 이용한다. 자연의 풍요로움이나 아름다움을 오염시키지 않고 자연의 회복력을 빼앗지 않으며 소박하게 살 수 있다면 ……. 이 길은 불편하지만 함께 나누는 생활양식을
선택하는 것이므로 십자가를 선택하는 것과 같다. 십자가를 지고 세상 만물을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뜻이 여기 있으리라. (2004 봄 새가정에 게재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