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기후위기에서 우린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

작성일
2022-04-04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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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하늘 빨간지구.jpg

<파란하늘 빨간지구>, 조천호, 동아시아, 2019

미세먼지 때문에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 시기쯤 조천호 박사의 강연에 참석한 어떤 이가 미세먼지에 대해 물었다. 당시 조천호 박사는 미세먼지가 재래식 무기라면 기후위기는 핵폭탄이라고 답했었다. 물론 미세먼지가 문제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게다가 심각한 미세먼지의 문제는 기후위기와 연관이 깊기도 하다. 파란 하늘을 그리워하고 꿈꾸는 이들에게 잿빛 하늘을 선물한 화석연료와 기후위기를 일으키는 화석연료는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향면에서 어떤 것이 더 끔찍한가를 따진다면 단연코 기후위기를 말할 수밖에 없다. 조천호 박사의 말은 그런 의미였다.

이 책은 대기과학자로서 국립기상과학원 원장을 지낸 조천호 박사가 이곳저곳 기고했던 글들을 한데 엮어 만든 책이다. 골치 아픈 과학 전문용어와 각종 수치가 난무할 것 같은 이력이지만 그의 글은 지구와 인간의 역사를 아우르고, 경제와 안보, 정치와 국제정세까지 두루 관여한다. 게다가 심지어 인문학적 통찰을 담고 있기도 하다. 물론 기후변화가 그런 것들까지 두루 관련되어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기후위기를 다루는 책이 건조하게 과학적 사실만을 풀어놓는데서 끝난다면 오히려 기후위기를 제대로 다루었다고 보기엔 힘들 것이다. 조천호 박사의 이 책은 사실상 그런 측면에서 오랫동안 축적해온 연구성과들을 잘 정리하여 쉬운 언어로 풀어낸 책이다.

책은 과거 원시 지구로부터 빙하기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구 기후가 굉장한 우연을 통해 안정화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그리고 그 기후가 우리 인류 문명을 탄생시키고 그 안에서 다양한 사건을 일으키는 사건의 배경 노릇을 했다는 사실도 이야기한다. 저자는 국가가 쇠락하고 흥하는 모든 과정에서 기후가 일정정도 배경노릇을 했다는 사실을 과거의 기후 데이터와 역사의 비교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이를테면 중국의 역사에서 북방 유목민족과 남방의 농경민족 사이의 갈등과 같은 형태를 들어 설명하는데 이는 기후가 농업생산력이나 북방의 목초지 면적에 대한 문제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빙하기라고 부르는 시기가 역사에 존재했고, 그로 인해 인류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는 사실도 책은 말하고 있다. 이는 인류라는 존재가 얼마나 지구 기후의 영향을 심각하게 경험하며 살아가는 존재인지를 이야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심지어 영향을 받는 존재였던 인류가 어느 순간부터인가 지구 기후에 심대한 영향을 주는 존재로 변해버렸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책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인류가 영향을 주어 만들어낸 세상에서 인류 자체가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을 과학적 언어로 설명한다. 인류가 배출한 온실가스가 지구의 기후를 변화시킨다고 말하는데 과연 기후 현상 자체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그리고 그것이 가져올 이면의 효과들까지 말이다. 우리가 말하는 해수면 상승이나 해양산성화, 토양의 침식, 물부족, 생물종다양성감소와 혹은 생물멸종에 까지 다양한 변화가 우리를 찾아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리고 아울러 이러한 변화가 얼마나 지구 안에서 불평등을 가중시키고, 위험을 키울 것인지도 말이다. 그리고 책은 기후위기 대응과 미래를 위한 제안도 담고 있다.

당면한 위기를 넘어서는 일을 위해 지구에 사는 사람 전체가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전제에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의 모든 노력을 수포로 만들고 우리 스스로를 멸종으로 인도하는 길에 서 있는지도 모르겠다. 세계 곳곳에서 들려오는 전쟁과 학살, 재난과 굶주림의 이야기들은 결국 현 체제의 문제를 드러낸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면서 모두가 함께 공존하는 세상에 대한 상상이 필요한 시기에 오히려 혐오와 배제, 심지어 폭력이 난무한다는 사실은 인류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파란하늘 빨간지구를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기후가 국제정세를 바꾸고, 경제체제와 사람들의 삶을 좋은 의미이든 나쁜 의미이든 아주 극적으로 바꾸는 배경이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먹거리가 사라진 세상에서 우리는 굶주리면서도 인간 존엄을 고민할 수 있을까? 내 집이 물에 잠기고 산불에 집이 전소되어도 우린 공존을 말할 수 있을까? 아마도 이미 도시의 쪽방촌에서 바람 한 점 통하지 않는 집에서 선풍기 하나에 의지하여 열대야를 나는 주민들은 그 답을 알고 있지 않을까?

임준형 (기독교환경운동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