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기후위기 시대 교회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작성일
2022-01-26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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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시대 교회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진형 목사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

아브라함은 ‘기후난민’이었다. UN난민기구는 가뭄, 홍수, 태풍, 폭설 등 기후적 요인으로 생존을 위협받아 본래 주거하던 지역에서 이주한 사람들을 기후난민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창세기 12장은 아브라함이 가나안에서 이집트로 내려가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하여 이집트의 왕의 아내로 보내게 되는 참담한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성경은 그 이유를 가나안 땅에 닥친 심각한 ‘기근’ 때문(창 12:10)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최근 고기후학자들은 과학적 연구를 통해 아브라함이 생존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기원전 2000년을 전후해 지중해 서안에서부터 유프라테스 티그리스 강 유역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 상당기간 강수량 감소가 지속되었음을 확인했다. 이러한 강수량 감소는 아브라함의 출생지였던 우르가 속해있던 수메르 문명 붕괴의 주요 원인이 되었고, 이 지역의 대규모 인구이동을 발생시켰다. 이 때문에 창세기는 계속해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이삭 - 창 26:1, 야곱 - 창 42:5) 역시 기근에 시달리다 이주를 하게 되는 상황을 전하고 있다. 성경 속의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 역시 지구적인 기후변화로 생존을 위협받은 전형적인 기후난민이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인도하신 약속의 땅에서 기후재난을 겪었던 기후난민이었다는 성경의 증언은, 기후위기 시대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신앙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아주 중요한 이해가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축복은 거대한 기후재난의 피폐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변치 않는 생명의 축복이었고,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기후위기라는 절망의 현실을 넘어서는 희망의 믿음이었다. 앞으로 우리가 경험하게 될 기후위기는 단순히 여름에 날씨가 조금 더 덥거나, 비가 더 많이 내리고, 태풍이 더 자주 발생하는 정도의 단순한 기상이변의 문제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10년 안에 기후위기는 우리의 경제, 사회, 정치, 문화, 국가 관계, 그리고 교회와 신앙의 근간을 뒤흔들 핵심 이슈가 될 것이다.
이미 우리는 코로나19 바이러스라는 재난을 경험하고 있다. 문제는 변이를 거듭하는 바이러스 자체에 대한 대응도 아직 완전히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인데, 이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숱한 경제적 문제들이 한계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많은 기후학자들은 기후위기로 인해 발생할 재난은 코로나19로 인한 재난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심각한 재난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해안 저지대의 도시가 침수되고, 수억 명의 기후난민이 발생하고, 식량생산 감소로 식품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가고, 기존 경제 시스템은 붕괴될 것이며, 국가 간 분쟁과 전쟁이 확대될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기후위기가 가져올 재난은 본질적으로 기후난민 아브라함이 경험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기후위기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믿음의 시험대가 될 것이다.

기후과학자들이 분석한 기후위기를 발생시킨 기후변화의 원인은 산업화 이후 엄청난 양의 화석연료를 사용함으로써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가 다량으로 배출되었기 때문이다. 이산화탄소는 대기 중에 수백 년 동안 머물면서 태양복사열을 가두는 온실가스 역할을 한다. 문제는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너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고, 이 이산화탄소 농도의 증가 속도에 따라 지구평균기온이 같은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너무 빠른 기후변화로 인해 지구 생태계에서 기후 적응성이 떨어지는 생물체들이 멸종을 맞고 있고, 오랜 시간 문명이 성장할 수 있는 최적의 기후 가운데 유지되어온 인간 사회가 지속가능성의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때문에 기후위기의 보다 궁극적인 원인은 인간사회의 경제발전이 지구 생태계의 생태적 한계를 인식하지 못한 점에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기후위기의 시대에는 지구의 생태적 한계를 넘어서는 성장을 추구해온 경제 시스템, 산업 구조를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 국제사회가 내린 결론이다. 지난 2018년 인천에서 개최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서 채택된 특별보고서는 2030년까지는 세계 각국이 탄소배출 최고치에서 탄소배출을 45% 감축해야하고, 2050년에는 탄소배출과 흡수가 0이 되는 넷제로에 도달해야한다는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의 기준을 제시했고, 이후 UN 기후정상회의에서는 세계 각국이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를 얼마나 철저하게 계획하고 성실하게 이행하고 있는 지가 주요 이슈가 되고 있다. 온실가스감축의 핵심은 석탄, 석유, 가스와 같은 화석연료를 언제, 어떻게, 얼마나 퇴출시킬 것인가에 달려있다. 이러한 변화는 재생에너지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국가에너지체계, 산업구조, 경제시스템 재구성을 수반할 것인데, 이는 우리 사회가 기후위기 시대의 적정 성장, 혹은 탈성장에 대한 인식과 이해에 맞물려 진행되어 나갈 것이다. 결국 기후위기를 통해 우리 사회는 사람들의 욕망에 충실한 무한 성장보다는 지구 생태계의 한계를 고려한 성장의 한계를 주목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는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첫째, 생태적 회심과 생태적 영성의 길이다.
성경은 지구 생태계를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라고 말씀하고 있다. 특히 창세기에서는 하나님의 창조세계에서 사람들은 피조물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것과 동시에 피조물들을 지키고 돌보는 다스림의 사명을 부여받은 존재(창 1:28)로 창조되었음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거룩한 사명을 잊고 욕망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죄의 존재가 되고 말았으며, 창조세계의 모든 피조물들도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들로 인해 죽음과 고통의 상황(롬 8:22)에 놓이게 되었다. 기후위기는 이러한 인간의 죄가 결국 창조세계의 파국으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교회는 기후위기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을 발견하고 구원의 길을 인도하는 등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기후위기가 창조세계 안에서 필요 이상의 풍요를 향한 욕망, 우리의 죄에서 비롯되었음을 고백하는 ‘생태적 회개’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교회가 기후위기를 신앙의 문제로 인식하게 될 때, 교회는 기후위기를 신앙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들이 두려움 없이 창조세계를 단지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로 삼을 수 있었던 이유에는, 교회가 창조세계를 온전히 돌보지 못한 책임과 함께 창조세계를 통해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계시를 소홀이 여긴 잘못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산과 바다, 들과 강을 통해 사계절의 시간 속에서 창조의 언어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셨지만, 죄로 교만해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고 교회는 이를 바로잡지 못했다. 때문에 이제 교회는 지구 생태계 가운데 임재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겸손히 귀 기울이는 ‘생태적 영성’의 길을 찾아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의 교회는 생명의 신비와 거룩함이 가득한 창조세계로부터 멀어진 사람들을 다시 본래의 자리로 인도하는 녹색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

둘째,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생명과 복을 따르는 길이다.
출애굽기에 기록된 출애굽 사건은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이집트의 풍요를 버리고 광야의 삶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회복해나가는 이야기이다. 이집트는 기근을 피해 찾아온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노예로 삼아 도시와 신전을 세웠으면서도, 자신들의 불의를 깨닫지 못하고 이들을 학대하고 차별하던 죄악이 가득한 사회였다. 이집트의 지배로부터 탈출했던 히브리 사람들은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며 하나님과 생명의 언약을 맺는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전 광야의 40년 동안 히브리 사람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이신다. 만나와 메추라기는 비록 노예였을 지라도 이집트에서 먹던 기름지고 풍성한 음식에 비할 수 없는 소박한 것이다. 하지만 만나와 메추라기는 하나님의 은총에 의지하는 삶을 상징하는 무엇보다 귀한 음식이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이미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광야의 히브리 사람들처럼 지금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아무 값없이 베풀어주고 계신다. 우리는 그동안 땅 속 깊이 묻혀있는 화석연료가 주는 풍요에 눈이 멀어 미처 우리 곁에 항상 가득한 햇빛과 바람과 물이라는 재생에너지를 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기후위기 대응의 성패는 에너지 전환에 달려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미국, 중국,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지금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엄청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비록 화석에너지가 가지고 있는 강력한 힘과 편리함에 비할 수는 없지만, 기후위기를 고려할 때 결국 장기적으로는 재생에너지가 경제적, 환경적으로 더 많은 편익을 준다는 것이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 시대의 교회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이 어떤 것인지를 분별하고 진정한 복의 길을 안내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히브리 사람들에게 생명을 선택하는 것이 복을 받는 길(신 30:19)이라고 말씀하셨다. 성경이 이야기하는 생명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우리들 앞에 살아있는 존재들이다. 때문에 기후위기 시대의 교회는 생명을 살리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공동체여야 한다. 지금 기후위기로 고통을 겪고 죽어가는 모든 생명을 살리는 일이 교회에 주어진 사명이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받는 길이란 것을 가르쳐야 한다.

셋째,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한 희망의 길이다.
교회가 궁극적으로 간직한 희망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새 하늘과 새 땅(계 21:1)을 향한 희망이다. 하지만 새 하늘과 새 땅의 희망은 긴 시련과 모진 환난을 참고 견뎌야만 이를 수 있는 곳이다. 기후위기의 재앙이 심각해질수록 사람들은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힐 것이다. 서로를 향한 다툼과 분쟁, 갈등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고, 깊은 슬픔과 절망, 무기력에 빠져드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이러한 절망의 상황에서도 교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포기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신앙의 공동체여야 한다. 기후위기는 교회에게도 큰 시련과 시험이 될 것이다. 끝까지 견디는 교회가 결국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필자가 섬기고 있는 기독교환경운동연대에서는 대기 중에 배출된 온실가스를 흡수하고 저장하기 위한 방안으로 10여 년 전부터 숲을 조성하는 일을 계획하여, 기후변화로 급속도로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는 기후재난국가 몽골에 300,000평방미터의 땅을 30년 동안 임차해서 ‘은총의 숲’이란 이름의 숲을 조성하고 있다. 최근에는 몽골 은총의 숲에 생태교육센터를 건립하여 지역 주민과 학생들에게 생태임농업과 생태환경 교육을 진행하려 하고 있다. 그동안 기후위기로 전통적인 목축을 포기하고 힘든 삶을 살아야했던 몽골 사람들에게 숲을 조성하여 숲이 주는 열매와 가공품으로도 경제활동이 가능할 수 있다는 새로운 희망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물론 당장 빵 한 조각이 아쉬운 사람들에게 길고 먼 기다림을 바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오랜 기다림이 없이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또 그만큼 쉽게 사라지기 마련이다.

곧 기후위기는 어떤 모습으로든 교회의 시련을 안겨줄 것이다. 하지만 시련은 곧 새로운 도전의 기회이기도 하다. 그동안 경제적 풍요 속에서 성장해온 한국교회가 이제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시련 가운데서 어떤 길을 선택하게 될까? 부디 바라고 간절히 기도하기는 기후위기 앞에 한국교회가 그동안 놓쳐왔던 교회다움을, 신앙의 본질을 되찾는 것이다. 그래서 좁고 험할 지라도 진정한 구원의 길로 이 땅의 생명 모두를 인도하는 희망의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한다.

(이 글은 교회성장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월간 교회성장 2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