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어떤 발자국을 남길 것인가?

작성일
2022-01-11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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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4월이 되면 기독교환경운동연대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생명문화위원회 실무자들은 “녹색교회”를 찾아 전국의 교회들을 방문한다. 하나님의 창조세계 보전에 관심을 갖고 생태적 목회를 잘 실현해 가고 있는 교회를 찾아 그해 5월에 있는 한국교회 환경주일 연합예배에서 그동안의 수고에 감사하며 ‘올해의 녹색교회’로 시상하기 위해서이다. 2021년에도 서울, 경기를 비롯하여 충남, 경북, 경남, 전북, 전남지역에 있는 10여개의 교회를 방문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교회들을 찾아갈 때마다 길은 멀어도 큰 설레임이 있다. 지역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환경선교사역을 하는 교회를 만날 수 있는 경험은 필자에게도 큰 힘이 된다.

올해 녹색교회로 선정된 교회 중에 해남에 있는 한 감리교회(해남새롬교회)를 소개하고자 한다. 교회는 크지 않은 규모이지만, 교우들과 지역 주민들을 위해 아주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지역아동센터, 바자회, 푸드뱅크, 청소년 카페와 쉼터, 나눔 냉장고, 재활용 물품을 나누는 초록 가게 등.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많은 일의 시작이 ‘폐지 줍기’였다는 사실이다. 오래전부터 힘써왔던 청소년 쉼터 사역이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자, 목사님 내외를 비롯한 교우들이 힘을 합해 지역에 버려진 폐지를 줍기 시작했다고 한다. 교회를 오다가도, 심방을 가다가도, 직장을 가다가도 거리에 폐지가 보이면 차를 세우고, 그것을 주워 차에 실었다고 한다. 그렇게 약 12년을 모은 폐지는 상당한 양의 자금이 되었고, 교회의 무료급식 센터 운영, 청소년 지원 등 지역 선교를 위한 기틀이 되었다.

이후 교회는 다시 지역사회에 필요한 새로운 일을 찾아냈다. 얼마든지 다시 사용이 가능한 물품들이 버려지는 것을 보고 그것을 재활용하여 필요한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교회에 마련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초록가게’였다. 현재 교회는 지역 내 15개에 이르는 헌옷 수거함을 통해 옷 등의 물품을 수거하여 저렴한 가격으로 나누고 있다. 수익금은 다시금 지역 선교를 위한 비용으로 쓰고 있으며, 남는 물량은 이웃 저소득국가에 보내고 있다. 이를 통해 자원순환뿐 아니라, 지역의 재활용 정책 마련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해남의 한 작은 교회가 하는 사역들을 보면서 든 생각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초록 발자국’이었다. 폐지를 줍고 쓸만한 물품을 분류하여 나누고, 음식물이 버려지지 않도록 나눔 냉장고를 세우는 일 등은 어쩌면 도시의 깔끔한 교회들은 꺼릴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기후위기 시대, 많은 이들이 소비와 소유, 화려함과 풍요에 경도되어 화석에너지를 마구 사용하며 회색빛 ‘탄소발자국’을 찍어내며 사는 이때, 지역의 이 작은 교회는 화려함과 풍요를 뒤로하고, 사람들이 남긴 탄소발자국들을 힘을 다해 지워가고 있었다. 지역 내 환경문제 개선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이미 가진 것들을 소중히 여기며, 그것들을 나누는 과정 속에서 생기는 따뜻함과 풍요로움을 세상을 향해 보여주고 있었다. 물질적으로 화려하지 않아도 가진 것을 나누며 서로 연결되어 살 때 우리는 얼마든지 풍요로울 수 있다는 것, 우리가 본디 그렇게 창조되었음을 세상을 향해 선포하는 듯했다.

기후위기 시대, 지금까지 쌓아왔던 인류 문명에 대한 반성이 깊어지고 있다. 교회 역시, 파괴되고 황폐해지는 이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어떻게 생명의 기운이 가득한 곳으로 되돌릴 것인가를 더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이다. 생명세계를 위협하는 ‘탄소발자국’이 아닌 생명을 살리는 ‘초록 발자국’을 향한 고민이 모든 교회들에서 깊어지기를 소망한다.

-2021.12.31 한국기독공보 현장칼럼, 이현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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