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기후정의, 우리가 상상하는 새로운 세상

작성일
2022-02-23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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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이 걸린 문제

이미 1972년 로마클럽이 ‘성장의 한계’라는 보고서를 발행한 순간부터 인류는 알고 있었다. 과거 비옥한 초승달 지대라고 불리던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그 온화한 기후로 인해 고대 수메르를 비롯한 수많은 제국들의 발상지였으나 지금은 심각한 토양의 황폐화(숲을 비롯한 다양한 생태계의 파괴)로 인해 과거의 위상을 찾아보기 힘든 땅이 되었다. 인류가 문명을 꽃피운 곳마다 사실 토양의 황폐화가 수없이 발생했으나 산업화 이전까지는 여전히 지구 생태계가 전체가 위험에 처할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나 산업화 이후, 인류가 생산하는 위험은 종류와 파괴력의 양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 결과가 지금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다.

다들 이미 체험하고 있는 문제를 다시 거론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이 위기의 양상이 전지구적이고, 심각하고, 막대한 피해를 낳고 있으며, 수많은 이들을 고통으로 몰아넣고, 회복이 힘든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된다. 그런 전제로 이 현상을 바라본다면 이 문제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된다. 우리가 2018년 겪었던 폭염이나 2020년 장마, 그리고 멀게는 몽골의 사막화와 시리아의 내전까지도 현상은 달랐으나 원인은 모두 기후위기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당장 이 문제는 생존에 걸려있는 문제로 인식될 것이다.

위기는 항상 우리의 곁에 있었다

이 위기는 하루 이틀에 시작되거나 알려진 문제가 아니다.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이 문제는 꾸준히 우리의 입길에 오르내렸으나 수많은 이해관계에 맞물려 해결책을 찾지 못했던 문제였다. 성장과 발전이 지상과제이던 시기가 있었다. 그리고 그 성장과 발전은 산업과 경제에 국한되었다. 수많은 기업과 국가는 추후 일어날 기후위기의 심각함보다는 눈앞에 있는 경제적 이익에만 몰두했고, 그 결과가 지금의 상황을 초래했다.

그간 수많은 과학자들이 무시하지 못할 과학적 데이터들을 통해 엄청난 피해를 낳고, 회복 불가능한 위험을 초래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으나 그 결과는 구속력 없는 선언으로 이어졌을 뿐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게다가 심지어 선언마저도 국가들의 이익에 따라 기준과 잣대가 옮겨지는 경우도 허다했다. 파리기후협약의 경우 탄소 감축의 기준이 될 산업화 이후 온도 상승치에 대해 1.5℃와 2℃가 팽팽히 맞섰고, 2℃로 유지하고 1.5℃를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의 괴상망측한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몇 년간 연구를 통해 1.5℃ 특별보고서가 발표되었고, 2℃로도 가능하리라는 기대는 무참히 깨어졌다.

1.5℃도 인류의 안전을 지켜줄 마지노선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보고서를 통해 확인했고, 아울러 1.5℃ 이하로 상승폭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향후 10년 안에 배출하는 탄소량을 절반으로 줄이고, 2050년까지는 배출하는 탄소량과 흡수되는 탄소량이 같은 탄소중립(넷제로)의 상태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어려운 과제까지 떠안게 되었다. 심지어 그 보고서가 나온 지 몇 년이 지나지 않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가 발간하는 연례보고서 여섯 번째 보고서의 1실무그룹 보고서는 1.5℃ 특별보고서보다 약 10년은 더 빨리 탄소중립을 향해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 충격을 준 바 있다.

시급한 대응이 필요하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시급한 기후위기의 상황은 시급한 대응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 대응은 지금껏 우리가 살아오던 방식에 대한 대대적인 전환을 일컫는다. 최소한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기 위해선 지금껏 우리가 사용해오던 화석연료와 결별해야 하고, 탄소배출이 심각한 방식의 농업과 축산을 다른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시멘트를 생산하는 방식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건축에서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대표적인 내연기관인 운송수단은 물론이고, 우리가 사용하는 공산품의 생산과 우리의 삶의 방식에서도 근본적인 변화들이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과학적 사실은 이야기하고 있다. 유럽과 한국이 근래 논의 중인 택소노미, 즉 녹색분류체계는 산업의 투자에도 역시 이런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세계는 빠르게 변화의 바람을 타고 움직여 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은 대선을 앞두게 되고, 선거에 나선 모든 후보들이 앞다투어 기후위기에 대한 공약을 내어놓고 있다. 우후죽순 발표되는 공약 속에서 대선 후보들의 정책을 비교하고 분석하는 기준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단순히 하나의 정책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미래와 직결된 것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핵발전은 기후위기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 핵발전을 늘려야 한다고 말하는 대선후보들이 있다. “탈원전 정책 폐지”를 선언한 윤석열 후보와 마찬가지의 입장을 지닌 안철수 후보뿐 아니라 이재명 후보 역시 같은 대열에 합류하는 것 같은 발언을 수 차례 해왔다. 그러나 핵발전은 답이 없는 핵폐기물 문제의 책임을 이후 세대들에게 전가하는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건설 기간과 상업운전까지의 기간이 길어 탄소배출 감축을 위한 골든타임에서 큰 효능이 없으며, 한정된 투자 기회를 헛된 방식으로 날려버리는 잘못된 대응 방식이라는 사실이 지속적으로 지적되고 있다. 기후위기에서 즉각적인 해결책으로 사용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공약을 남발하고 있는 것이다. 심상정 후보를 비롯한 진보정당 후보들은 에너지 전환에서 핵발전은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 이는 미래의 모양을 심각하게 바꾸는 일이다. 이는 기후위기 공약 전반을 살펴보면 더 극명히 드러난다.

2030 온실가스감축목표는 대응 의지의 표현이다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이하 2030 NDC)에 있어서도 후보들은 차이를 드러낸다. 청소년기후행동이 대선후보별로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과 공약들을 정리한 모두의 기후정치 사이트는 이런 차이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기후위기라는 의제의 중대함은 대다수의 후보들이 비슷하게 인식하고 있으나 2030 NDC와 같은 세부의제에서 이재명 후보는 현재 정부 안에서 약 10% 상향된 안을 제안하고 있고, 윤석열 후보는 명확한 입장이 없는 것으로, 안철수 후보는 기준이 되는 해당 연도를 밝히지 않아 기준이 명확하지 않지만 일단은 현 정부의 감축 목표치와 동일한 수치를 제안하고 있고, 심상정 후보는 기준년도를 2010년으로 변경하고 2010년 대비 50%로 감축하는 안을 제안했다.

NDC가 중요한 이유는 2050년 탄소중립으로 가기 위해 2030년까지 한국 사회가 감축경로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2030년까지 우리가 얼마만큼의 탄소를 어떤 분야에서 감축해갈지를 정하는 구체 계획안을 수립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030 감축목표가 적다는 말은 2030년부터 2050년까지 남은 기간 동안 훨씬 더 많은 양의 탄소 감축을 하던지 아니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목표를 수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온실가스는 방출 즉시 기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고, 축적되고 누적된 양에 따라 후과가 기한이 지난 후에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에 당장 10년간 얼마나 많은 양의 탄소배출을 감소시키느냐가 어쩌면 기후위기 대응을 성공, 혹은 실패로 가늠하게 되는 잣대가 될 수 있다. 그러한 기간 동안 우리는 산업구조를 지키기 위해 배출을 줄일 수 없다고 선언하는 것은 기후위기 대응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석탄화력발전은 좌초자산이다

석탄화력발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안철수 양 후보는 2030년 석탄화력발전 퇴출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장기적 안목에서 석탄화력을 줄인다는 입장에는 동의하지만 말이다. 이재명 후보는 2030년 퇴출에 공감한다는 입장이었고, 심상정 후보를 비롯 진보후보들은 동의를 표했다. 제러미 리프킨은 석탄산업을 기후위기 상황의 대표적인 좌초자산이라고 그의 책 ‘글로벌 그린뉴딜’에서 밝혔다. 이는 유럽의 텍소노미와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석탄을 중심으로 한 산업은 이후 퇴출될 운명에 놓여있으므로 이러한 산업을 빠르게 전환해가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사안이라 할 것이다. 이들 대선후보들의 입장 차는 그런 측면에서 눈여겨 볼만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비롯해 기후위기는 정의로운 전환(노동자 및 기후위기 약자, 피해자의 구제 등)과 산업구조의 변화와 농업과 축산 등의 다양한 분야까지도 세부적인 차원에서 어떤 방식으로 가는 것이 좋을지를 유권자가 각자 고민해야 한다. 그들 중 누군가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그 선택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정의롭고 민주적인 변화로 미래를 바꾸자

기후위기비상행동을 비롯한 기후 운동그룹들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대대적인 변화의 과정에서 ‘정의’의 문제에 초점을 두기를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고 김종철 녹색평론 편집장이 기후위기 대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한 것은 ‘민주주의’였다. 하나는 지향이고, 하나는 방식을 일컫는다. 물론 정말 민주적인 방식은 정의를 포괄하는 것이 당연하고 정의로움은 소수의 목소리라도 사람들이 소외당하지 않는 것이니 둘은 다르지 않다. 우리의 선택이 우리의 미래를 가른다면 최소한 우리의 기준이 정의롭고 민주적인 것이기를 바라는 것, 그리하여 누구도 고통당하거나 소외당하지 않는 사회를 상상하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에서 우리가 꾸어볼 꿈이 아닐까?

출처 : 평화나무(http://www.logosian.com)

임준형 사무국장이 평화나무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