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당신들이 우리를 배신한다면, 우리는 당신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작성일
2020-05-18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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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이 우리를 배신한다면, 우리는 당신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이진형 (목사,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이 ‘팬데믹’ 상황이 된지 한 달이 지났다. 여전히 코로나 19는 선진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의 전염병 방역과 대응 체계의 취약성을 드러내며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4월 15일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는 시민들은 신중한 의사결정으로 제 21대 국회의원을 새롭게 선출하여 국회가 제 역할을 감당하기를 바라고 있으며, 그리스도인들 역시 생명과 평화와 정의를 이루는 국회가 구성되기를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지금 코로나19의 확산은 개별 국가의 시스템을 넘어서 글로벌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노동, 에너지, 금융, 식량 시스템을 속절없이 무너뜨리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질병관리본부를 중심으로 방역 리더십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투명한 정보 공개와 매뉴얼에 따른 신속한 대응으로 아직까지 통제 가능한 상황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대응이 가능했던 것은 의료진들, 공공서비스 종사자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아울러 지난 2015년 메르스의 위기 경험을 통해 감염병 확산에 대처하는 사회 시스템을 꾸준히 준비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롭게 구성될 21대 국회의 최우선의 사명은 코로나19로 인한 위기 극복에 초당적으로 협력하는 것과 함께, 앞으로 닥칠 어떠한 종류의 위기 상황에서도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국가 시스템을 만들어 정부가 시민들의 안전한 삶을 지켜주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한 위기를 경험하고 있지만, 사실 이 위기는 오래전부터 예견된 것이며 더 큰 위기의 일부일 뿐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구의 평균 기온이 1℃ 오를 때마다 전염병이 4.7% 늘어난다고 예측을 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지난 1990년부터 다섯 차례에 걸친 평가 보고서를 통해 기후변화의 진행으로 세계적인 감염병의 확산이 빈번해질 것이라는 과학적 연구 결과를 지속적으로 발표했는데, 특히 지난 2014년에 발표한 제 5차 보고서에서는 “기후변화가 심화될 경우 21세기에 걸쳐 많은 지역에서 질병률이 높아질 것이며, 이는 특히 개발도상국 내 저소득층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를 했다. 또한 IPCC는 이대로라면 이번 세기말이면 지구 평균기온의 상승이 3도를 넘어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해안저지대 침수, 기상이변으로 인한 기근과 홍수, 식량생산 감소로 인한 국제적인 분쟁, 수억 명의 기후난민 발생, 생물멸종 위기가 발생할 것이라는 기후변화의 영향에 대한 분석 자료를 각국의 정부에 전달했다. 하지만 우리는 수십 년 동안 과학자들이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국회가 여야를 가릴 것 없이 자신들만의 정치, 자신들만의 국회로 4년의 세월을 허송세월 하며 이미 평균기온의 상승이 1도를 넘어선 기후위기에 대한 그 어떤 대책도 마련하지 않았다. 국회에는 기후위기를 다루는 전문 위원회조차 구성되지 않았고, ‘기후깡패국가’를 자초한 정부의 안이한 기후위기의 대응조차 정쟁의 도구가 되어 시행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이제 코로나19 보다도 더 강력하고, 더 지속적이며, 더 광범위한 기후위기가 현실이 되었다. 이제 국회가 기후위기를 직시하고, 기후위기를 인정하며,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한다. 국회가 기후위기에 대응할 컨트롤 타워를 세우고 기후위기에 대처할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21대 국회가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국회가 기후변화를 줄이고, 기후변화로 발생할 환경 피해를 피하기 위한 위기 대응에 총력을 기울일 것을 결의하는 ‘기후위기 비상사태’를 선언하는 것이다. 이미 지난 해 11월 28일 EU 의회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기후 환경 비상사태(Climate and Environmental Emergency)’를 선언하는 결의안을 채택한 바 있다. 이를 통해 EU 의회는 산업, 금융 등 관련 분야의 기후 환경 규제를 강화하고 있고, EU와 교역하는 국가들에게도 이러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일부 지자체의 의회에서만이 ‘기후위기 비상사태’를 선언했을 뿐 국회 차원의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아울러 국회는 기후위기에 대응할 ‘기후위기 위원회’를 신설하여 온실가스 배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에너지 전환은 물론 산업구조 전반의 전환을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또한 아울러 정부에도 기후위기 대응을 적극적으로 요청하여 기후위기 대응을 주도할 조직 개편과 위원회 설립의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 위기는 사회에서 취약한 계층에게 가장 먼저,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힌다. 이제 21대 국회는 지난 세기 한국사회 최우선의 가치였던 경제성장 대신 생명과 안전이 우선되는 사회를 만드는 ‘전환 국회’가 되어야 한다. 기후위기에 맞선 정부, 기업, 시민들의 연대와 협력을 이끌어낼 사회적 합의를 모색해야 한다. 이제 시장과 자본의 논리가 아니라, 생명의 상호의존성과 공공성에 기초한 새로운 사회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이끌어야 한다. 또한 이러한 전환이 일부의 세력이 아닌 사회 구성원들의 민주적 의사결정과 투명성에 의해 진행될 수 있도록 감시와 참여의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코로나19 대응에 세계적인 모범적인 사례가 되었듯이 우리사회는 기후위기 대응에도 세계를 이끌어갈 수 있는 선한 힘과 의지를 가지고 있다.

위기가 다가오는 것을 피할 수 없다면 위기에 대처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다. 또한 위기는 상황이 심각해지기 전에 신속하고 적극적인 대응을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가장 적은 비용이 소요된다는 것을 이미 우리는 코로나19를 통해 생생히 경험하였다. 제 21대 국회는 기후위기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주어진 마지막 국회가 될 것이다. 국제적인 협약과 실천을 통해 2030년까지 지구기온 상승을 1.5도 이내로 제어하는 전환을 이루지 못한다면 인류의 문명과 지구의 생태계는 파국에 이를 것이다. 제 21대 국회는 이러한 막중한 책무를 기억하고 신중한 자세로 국회의 문을 열어야 할 것이다. 지난 해 그레타 툰베리는 미국 뉴욕에서 열린 UN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기후위기를 위한 행동에 나서지 않는 세계 정상들을 향해 “여러분이 우리를 실망시키기를 선택한다면, 우리는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분노로 가득한 연설을 하였다. 만일 제 21대 국회가 기후위기를 외면하고 여전히 자기들만의 정치를 탐닉한다면, 시민들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망설임 없이 국회의원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위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