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후쿠시마와 경주,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작성일
2020-03-11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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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와 경주,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임준형(기독교환경운동연대 간사/핵그련 사무국장)

3월 따듯한 봄바람이 곧 불어올 참이었다. 다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봄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일상, 아주 평범한 하루였을 것이다. 2011년 3월 11일 금요일 14시 46분 일어난 일명 동일본 대지진이 없었다면 말이다. 해양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인해 쓰나미가 마을을 덮쳤고, 수많은 이들이 죽어갔다. 하지만 만약 그것이 끝이었다면 후쿠시마는 아마도 지금쯤 사람들의 노력으로 복구되고,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핵발전소가 없었다면 말이다.

쓰나미는 핵발전소를 피해가지 않았다. 후쿠시마 사람들의 삶은 순식간에 망가졌다. 고향을 떠나 피난을 가야 했다. 핵발전소 인근은 사람이 살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상황이 되었다. 직업을 잃고, 이웃을 잃고, 소소한 일상을 잃어버려야 했다. 또한 방사성 물질로 인해 건강의 문제도 생겼다. 2019년 자료에 따르면 후쿠시마 인근 지역의 아동들의 갑상샘암 발병 비율이 일반적인 소아 갑상샘암 발병비율에 비해 67배에 달했고, 그 외에도 각종 방사성 물질로 인한 질병들이 다수 발생했다. 그리고 후쿠시마 출신이라는 이유로 받아야 했던 차별도 심각한 문제였다. '삶'을 잃어버린 것과 다름없었다. 그리고 9년이 지난 지금 일본 정부의 대응은 모두들 언론에서 쉽게 접하는 그대로다. 올림픽을 위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각종 거짓말이 곳곳에서 폭로되고 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앞서 사고를 겪은 체르노빌은 30년이 넘었으나 아직도 사람이 살 수 없다. 그리고 체르노빌 출신, 혹은 체르노빌 인근 지역의 사람들과 그들의 자녀들은 여전히 피폭으로 인한 피해에 시달리고 있다.

'월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경북 경주시 양남면을 비롯해 전남 영광(한빛), 경북 울진(한울), 부산광역시, 울산광역시(고리, 신고리) 핵발전소 인근 지역, 더하여 대전광역시(원자력연구원) 인근 주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은 후쿠시마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크게 다르지 않다. 핵발전소 인근에서 일어나는 일상적 피폭에 대해 '기준치 미만'이라는 말은 '만병통치약'이다. 하지만 가족력이 없는 이들이 핵발전소 인근에 산다는 이유로 갑상샘암에 걸리는 일이 비일비재한 상황이다. 병에 걸린 원인을 알아도 증명할 길이 없으니 피해를 보상받거나 이주대책을 요구할 수도 없다. 근래 개봉한 영화 '월성'의 나래이션을 맡은 황분희 월성인접지역 이주대책위 부위원장은 갑상샘암 수술을 한 자신보다 세 배나 많은 삼중수소가 소변에서 검출되는 손녀, 손자를 보며 아이들의 미래를 염려한다. 핵발전소 인근에 산다는 이유로 당하는 폭력이지만 보상은커녕 손녀, 손자, 아들, 딸의 미래를 위해 삶의 터전을 옮길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조차도 외면당한다.

2012년 발표된 '핵 없는 세상을 위한 한국 그리스도인 신앙선언'은 그리스도인들이 핵을 바라볼 때 '피폭자'(피폭당한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보기를 요청한다. 모든 폭력이 그렇듯 폭력의 경험은 마음 속에 상흔이 된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 분노와 상실감, 무기력과 절망이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핵발전소 인근 주민들도 마찬가지의 감정을 겪곤한다. 다들 태연한척 살아가지만 절망적인 진실 앞에선 무너진다. 굳이 그리스도인에게 이 끔찍하고 폭력적인 경험을 마주대하도록 신앙선언이 요청하고 있는 이유는 그곳에서만 핵의 진면목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세상은 경제성장, 부유함, 풍요가 마치 핵발전의 소산인 것처럼 이야기 한다. 그러나 그것이 내 이웃의 눈물과 고통 위에서 만들어진 가짜 풍요, 가짜 경제성장임을 '피폭자의 시선'은 폭로한다. 피폭자의 입장에서 핵을 바라볼 때 우리는 "핵과 기독교 신앙은 양립할 수 없다"고 비로소 말할 수 있게된다. 3.11 후쿠시마 핵사고 9주기를 보내며, 아직도 고통받고 있는 후쿠시마와 대한민국의 핵발전소 인근 주민들을 기억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한다.

* 기독공보에 연재한 글입니다.
* 사진은 2020년 3월 11일 탈핵시민행동의 기자회견 퍼포먼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