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이제는 끝나야 할 기록으로

작성일
2022-07-07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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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원불교반핵운동사 1 _ 끝나지 않은 기록』

아마도 2017년이었던 것 같다. 처음 핵발전소를 실물로 본 날 말이다. 엄청나게 큰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서 있는데 기계가 돌아가는 듯한 소리가 들리고, 쇠 철문은 굳게 닫혀있고, 그 앞을 누군가 지키고 서 있었다. 군인들이었던 것 같다. 핵발전소를 코앞에 두고 무대를 설치하고, 자리를 깔아둔 채 집회를 하는 생경한 경험도 했던 것 같다. 너무 이른 아침에 서울에서 출발한 탓에 수면 부족으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시간이 많이 지나서 잊은 것인지 아무튼 그날의 기억은 또렷하지 않다. 다만 원불교가 이 순례를 시작하게 된 계기, 그리고 절박하게 지금도 이 싸움을 이어가야 할 이유를 이야기한 것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원불교는 한국에서 유래한 종교이고, 특히나 영광은 창시자인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의 고향이자 그가 구도하여 깨우침을 얻은 곳이기도 한, 원불교 사람들에게 가르침의 고향 같은 곳이다. 기독교인들이 이스라엘을 ‘성지’라고 부르듯, 영광은 원불교 사람들의 ‘성지’인 것이다. 그래서 원불교인들에게 영광을 중심으로 한 탈핵 운동은 ‘성지수호’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원불교대학생연합회가 처음 이 문제를 제기하고 원불교가 탈핵 운동을 시작한 것은 이런 맥락을 갖는다. 그리고 항상 모든 종교의 운동이 대부분 그렇듯, 될법하다고 하여 시작하고, 안될 것 같아 그만두는 일은 사실 가능하지 않다. 종교인들의 운동 동력은 보통 현실 너머에 있으니 말이다.

“금수 초목도 연고 없이 꺾고 살생하지 말라”는 정전에 담긴 소태산 대종사의 글귀를 빌어 생태계와 지구를 파괴할 수 있는 핵을 반대하는 운동을 엄숙한 종교적 사명으로 선언한 김현 교무의 글은 종교가 가진 운동의 동력을 보여주는 측면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종교적 신념을 통해 일어난 운동이 영광핵발전소 1·2호기 건설 이후 촉발되고 있었던 지역의 반핵운동과 결합해 영광지역의 탈핵 운동이 더욱 탄력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운동을 시작한 이들은 그저 지역의 문제로 이것을 인식하지 않았고, 다양한 이들을 초청해 배움의 시간을 가지며 종교적 가르침에 빗대어 이 문제를 재인식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이후 운동은 영광 3·4호기 핵연료 장전 저지 운동으로 이어지고, 5·6호기 건설 저지 운동으로 연결되게 된다. 그리고 핵발전소에 이어지는 핵폐기장 반대 운동까지 더하여 긴 세월의 싸움을 이 책은 담고 있다. 담당하는 교무는 바뀌더라도 성지를 지킨다는 신념은 변함이 없었고, 원불교는 이후의 싸움에서도 지역의 주민들과 함께 단식도 삭발도 함께하며 현장에서 함께했다. 그리고 영광뿐 아니라 부안에서도 원불교는 싸움을 이어나갔다.

『원불교반핵운동사』 1권은 1987년부터 2006년까지의 기록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역사뿐 아니라 그 사건의 현장에 함께했던 이들의 글과 인터뷰도 담고 있다. 아마도 이후 운동에 대한 이야기들은 2권에 담기게 될 예정인 것으로 보인다.

“원불교 성지뿐 아니라 이 땅 어디에도 핵발전소와 핵폐기장은 안됩니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강해윤 교무가 집회에서 했던 이 발언은 원불교가 핵을 바라보는 관점을 보여준다. 처음엔 핵발전소의 문제를 성지의 문제로 국한시켜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겠으나 핵에 대해 공부하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핵 문제가 단순히 성지가 있는 지역의 안녕을 해치는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확장시켜 가는 과정을 이 책은 담고 있다. 특히나 종교가 핵 문제에 어떻게 타협 없이 운동할 수 있는지도 보여준다. 아마도 그것은 어쩌면 종교가 생명에 대한 외경과 인간 존엄성에 가치를 두고, 생명의 안녕과 평화라는 포기할 수 없는 사명을 갖고 있다고 스스로 믿는 한 포기할 수 없는 운동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이 기록은 아마도 모든 핵발전소가 폐쇄되고 수많은 이들이 핵으로부터 안전하게 되기까지는 멈출 수 없는 기록이 될 것이다. 그리고 멈추게 되는 날 아마도 펜을 내려놓으며 함께한 모든 이들을 위로할 것이다. 그간 무던히도 애쓰셨다고 말이다.

임준형 사무국장(기독교환경운동연대)

탈핵신문 2022년 6월(100호)

출처 : 탈핵신문(http://www.nonukesnew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