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더 누리려는 것은 더 빨리 지구에서 사라지려는 것이다 [기환연과 함께 걷는 초록빛 일곱 발자국]
작성일
2024-12-13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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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기환연과 함께 걷는 초록빛 일곱 발자국>
더 누리려는 것은 더 빨리 지구에서 사라지려는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 딸이 소파에서 흘러내리다가 멈췄다. 이윽고 한숨을 쉰다. 그러더니 연신 "내일이야"라고 한숨 섞인 말을 하는데 묘한 가락이 있다. 초점을 알 수 없는 눈빛이 허공을 맴돈다. 왜 그러냐고 꽤 다정한 말투로 물었지만, 대답 대신 돌아오는 건 긴 한숨뿐이다.
다음 날 아내를 통해서 그 한숨의 사연을 들었다. 아이돌 그룹이 음반을 발매하는데 그게 꽤 비싸다는 거다. 그래서 감히 사 달라는 말을 꺼내지 못하고 한숨만 내쉬었다는 거다. 거절이 무서웠을까? 거절에 이어질 잔소리가 더 무서웠을까? 딸은 내게 앨범을 사 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이돌 그룹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고 음반의 가격만 기억하는 후진 아빠인 걸 알아챈 걸까?
아내는 6만 원도 더하는 그 앨범을 사 주기로 했다. 적잖이 놀랬지만 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딸이 3개월간 하루에 한 시간씩 공부하는 조건으로 앨범을 약속했노라고 말하는 아내의 표정이 맑다. 두 사람의 욕망은 교차하는 지점이 명료했다. 내게는 퍽 좋은 일이다. 눈치가 빨라서 무언가 사 달라고 조르는 법이 없는 딸애의 한숨 소리는 짧아서 슬프기 때문이다. 아내의 처사는 가혹하지 않다. 그게 그나마 지키기 쉬운 약속인 걸 깨닫는 나이가 되기까지, 공부 약속은 방귀보다 힘이 없기 때문이다.
딸은 앨범을 얼마나 기뻐할까? 얼마나 만끽할까? 5분가량 소리지르고 며칠 동안 굿즈를 어루만지거나 포토 카드나 스티커 모서리를 만지작만지작하는 게 고작일 게다. 그리고 앨범과 굿즈는 딸의 방을 어지럽히는 역할을 하는 정도로 딸과의 관계를 이어 갈 것이다. 이 수순은 개가 똥을 싸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딸은 이따금 누에고치처럼 가만히 웅크리고 누워서 유튜브 삼매경에 빠진다. 그런 자세의 딸에게 분명히 어떤 인플루언서가 바람을 넣었을 것이다. 얄밉게 카드 모서리를 매만지는 모습을 보여 주며 자랑질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딸에겐 그 인플루언서처럼 많은 앨범을 가질 방도가 없다.
어른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가지고 싶은 것의 단가가 놀랍게 커졌을 뿐이다. 저마다 자신의 인플루언서가 있다. 인플루언서는 행복을 우리가 움켜쥘 수 없는 거리로 옮겨 놓는다. 조금 다가섰다 싶으면 툭툭, 이강인 선수가 드리블하듯 행복을 몰고 간다. 어른들은 참 불쌍하다. 욕망으로 펄펄 들끓는 증기로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토해도 도대체 왜 그러는지 아무도 물어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게 자연스럽고 당연하기라도 한 것처럼, "너는 결코 이강인의 공을 빼앗을 수 없다"라고 아무도 얘기해 주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하련다. 우리는 몸매와 상관없이, 결단코 이강인의 공을 빼앗을 수 없다.
아이들은 천진난만해서 마음을 읽기가 쉽다. 애써 감추려고 하지도 않는다. 얼이 그대로 비치는 얼굴과 드러나도 괜찮은 깨끗한 마음이 부럽다. 대안 학교에서 학생들과 지내노라면 아이들의 마음이 그림처럼 보일 때가 있다. 학생들이 애써 무언가를 잘하려는 이유, 애써 가지려는 이유는 인정받고 싶어서다. 인정받으려는 이유는 사랑받기 위함이다.
그런데 학생들의 처절한 몸무림이 무색하게도, 사랑은 인정받을 만한 재주나 물건이 없어도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지고 긍정되는 경험이다. 사랑은 이강인 드리블을 쫓는 처량한 노릇을 멈추게 한다. 사랑의 한마디가 한 생을 구원하기도 한다. 사랑을 알아차리고 음미하기 시작한 학생은 마침내 속절없이 반복되던 비교를 멈출 힘을 얻는다. 그러나 여전히 소유밖에 무언가를 누리는 방법을 알지 못하고, 성적밖에 자신을 증명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학생도 있다. 사랑이 더 필요한 계절이다.
미니멀 라이프에 관한 글을 쓰려고 자료를 조사하기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미니멀라이프 인플루언서'들이다. 그들이 보여 주는 미니멀 라이프는 가구나 집기가 없는 휑한 방과 거실이다. 그 모습이 내겐 그렇게까지 과격하게 비우지 못하는 여염집 살림꾼들에게 자랑하는 것처럼 보였다. 보여 주는 것으로 자신을 증명하고 싶은 충동을 버리지 못했으니 그들은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하지도 못했다.
미니멀 라이프는 억지로 비우는 게 아니라 진짜 있어야 할 것이 채워진 삶을 말하는 게 아닐까? 내가 살아가는 이유와 추구하는 가치가 든든히 정립되었다면 소유로 너를 증명하라는 속삭임에 휘둘리지 않을 거다. 반면 소유물이 자기 자신인 사람은 또 다른 욕심으로 미니멀 라이프를 흉내 낼는지는 모르지만 담박한 삶이 주는 편리와 단출한 기분을 누리지는 못할 거다. 그들에게 미니멀 라이프라는 것은 어떤 종류의 결여를 계속 견디는 일이 될 공산이 크다. 자신 그 자체인 소유를 덜어 낸 상실을 사람이 어찌 견딜 수 있으랴? 그러니 미니멀 라이프는 충만한 존재가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아닐까?
세계 인구 중 가장 부유한 10퍼센트가 1990년 이후 총 탄소 배출량의 절반 이상에 책임이 있다. 가장 부유한 1퍼센트의 개인들은 인류의 가난한 절반에 속하는 개인들보다 100배 많이 배출한다.(<Less is more>, Jason Hickel, 2021) 데이터는 명확하다. 그러니 기후변화가 인류의 지속을 위협하는 지금, 많이 가졌다는 것은 자랑거리가 아니라 오히려 부끄러운 일이다.
산돌학교는 학교의 철학을 따라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라고 가르친다. 연결은 결코 느슨하지 않고 시공을 관통한다. 필요 이상의 것을 구입하고 소비하고 쌓아 두는 건 지구 위에 살아가는 누군가의 생계, 건강, 생명을 위협하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일이다. 지금 내가 손가락을 마우스 위에 얹어 몇 번 까딱여 물건을 구입하는 쉽고 사소한 일이 내일의 나와 자녀들의 기아와 질병, 죽음 같은 크나큰 고통에 연결된 것이라면 이제는 내 욕망에 말을 걸어 보아야 하지 않을까? 기후 학자들의 경고는 무척 간단하다. 인류가 더 누리기 위한 일의 종국은 더 아픔이 아니라 사라짐이라는 거다. 그러니 필요 이상을 가지고 누리려는 노력은 하늘만큼 땅만큼 파렴치하다.
자녀들은 내겐 창세기의 주석과도 같다. 자녀들이 나를 향해 웃을 때 느끼는 감정을 통해 하나님에 관하여 알게 된 것은 신학교에서 공부로 얻은 것보다 더 많다. 가르치는 학생들이 소유에 연연하지 않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혜가 없는 사랑은 폭력이 되기 쉽다. 자녀를 위해 많은 소비를 한다는 것은 입으로는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손으로는 매질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자녀를 사랑하는 일은 예쁜 옷을 향해 야생마처럼 날뛰는 욕망을 길들이는 일이다. 나를 사랑하는 일은 내일의 내가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멋진 차를 치열하게 포기하는 일이다. 나의 구매는 어떤 사건인지 인류의 운명을 걸고 스스로를 돌아볼 일이다. 내가 가진 것은 대부분 내가 산 것들이니까. 지름신이 산 게 아니니까.
김국진 / 목사, 대안 학교 산돌학교 교장,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집행위원
[출처: 뉴스앤조이] 더 누리려는 것은 더 빨리 지구에서 사라지려는 것이다
<생명의 길 초록발자국> 캠페인의 일환으로, 생태적 삶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며 써내려가는 에세이를 매월 2회 연재합니다. 세번째 연재는 "미니멀 라이프"를 주제로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집행위원을 맡고 계신 김국진 목사(산돌학교)님이 작성해주셨습니다.
기독교환경운동연대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의 창조세계를 지키고 돌보는 생태적 삶을 안내하고자 한국교회 탄소중립 캠페인 <생명의 길 초록발자국>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길 초록 발자국>은 기후위기의 상황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의 가정과 교회,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식, 의, 주, 에너지, 교통, 문화, 경제의 7가지 영역에서 탄소배출을 줄여나가는 삶을 실천하는 캠페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