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간절히 바라옵건데, 이주

작성일
2022-11-02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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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히 바라옵건데, 이주

<원전 마을>, 김우창 지음, 경주환경운동연합 기획, 한티재, 2022

월성 핵발전소가 뉴스에 나왔다. 화면에선 콘크리트 구조물에 균열이 생겨서 물이 새어나오는 장면이 흘러나오고, 기자는 사용후 핵연료 저장수조에서 물이 새고 있다고 말했다. ‘사용후 핵연료 저장수조? 그건 새면 안되는데……’ 라고 혼자 중얼거렸다. 지하수에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었고, 원인을 찾아가다 보니 사용후 핵연료 저장수조에 차수막이 깨지고, 콘크리트 자체에도 균열이 생겨 물이 새어나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용후 핵연료는 말 그대로 핵발전에 사용된 핵연료이다. 발전에 사용할 만큼의 열기는 아니지만 여전히 열을 내는 물건인데다 핵분열이 지속되기 때문에 물속에 넣어서 열기를 식히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사용후 핵연료는 핵분열 과정을 거치면서 다양하고 강력한 방사성 물질들을 갖고 있다. 방사성 물질은 세포를 파괴하고 변형을 일으키는 등 인체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 그런 방사성 물질이 다량 포함된 사용후 핵연료를 보관하는 수조가 균열이 생긴 것이고, 물이 새어나가고 있었다는 말이다. 한수원은 이 물이 핵발전소 지하에 고이 모여있을 뿐 밖으로 새어나가지는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그 주장이 검증된 바는 없었다.

이런 뉴스가 나올 때마다 답답한 가슴을 부여잡고 아파하는 이들이 있다. 어른부터 아이까지 모두의 소변에서 삼중수소라는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는 이들 말이다. 자신들이 숨 쉬는 공기, 먹는 물, 직접 기른 채소, 어떤 것도 안전하지 않은 동네, 나아리의 주민들이다. 이들은 오래전부터 이주를 요청하며 싸워오고 있었다. 정부는 핵발전소가 유해하다는 사실을 숨긴다. 방사성 물질에 기준치를 정해두고, 기준치 미달을 이유로 보상조차 하지 않는다. 핵발전소 인근 주민들이 핵발전소로 인해 받는 돈이 있지만 이는 보상금이나 배상금이 아니라 지원금이다. 마을엔 가족력도 없는 갑상선 암으로 인해 갑상선을 떼어내고 평생 약을 달고 살지 않으면 안되는 이들이 꽤나 많지만 갑상선 암과 핵발전소의 인과를 인정받지 못해 이주도, 보상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들의 삶을 알기 위해 저자 김우창은 8개월을 그곳에 내려가 주민들을 인터뷰하고 주민들의 집회에도 참여하며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했다.

책이 다루고 있는 <원전 마을>은 경주시 양남면, 옛 지명으론 ‘월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동네다. 마을 입구엔 문무대왕이 묻혔다는 전설이 깃든 대왕암이 있다. 마을로 들어가 바닷가로 조금만 걸어가면 작은 돌들이 가득한 해변이 있고, 코 앞에 핵발전소가 보인다. 주민들은 대를 이어 그곳에 살기도 했고, 이주하여 그곳에 살기도 했다. 농사를 짓기도 하고 장사를 하는 이들도 있었고, 직장을 출퇴근하는 이들도 있었다. 서로 이웃하여 살지만 서로 다른 삶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같은 운명에 처한 것은 2011년 이후다.

그 전까지만 해도 핵발전소는 그저 이웃에 있는 전기공장에 불과했다. 물론 가끔 굉음을 내고, 많은 양의 수증기를 내뿜는 모습을 보긴 했으나 그것이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주민들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아니 사실은 핵발전소가 달라진 것이 아니고 핵발전소를 바라보는 주민들의 눈이 달라졌다. 특히나 자신들과 함께사는 자식, 손자들의 소변에서 삼중수소가 나왔다는 말을 들은 순간부터는 사실상 핵발전소와 공존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을 것이다. 그래서 주민들은 상여를 끌기 시작했다. 한수원 직원들이 출근하는 길에 상여를 끌고 이주를 위한 투쟁을 시작한 것이다.

왜 주민들의 요구가 ‘이주’인지를 묻는 이들이 있다. 사실 주민들에게 이곳은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추억이 깃든 집이자 어떤 이에겐 조상 대대로 이어 살던 고향이지만 이젠 창살 없는 감옥이 되어버렸다. 지진이 나면 내 집보다 핵발전소를 먼저 고민해야 하는 주민들이었다. 집을 팔고 떠나고 싶었지만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이 지역으로 이사를 올 사람은 없었다. 하물며 누군가 이사를 온다고 해도 그들에게 집을 파는 일은 사실 어쩌면 나 살자고 다른 이를 고통으로 내모는 일과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주민들은 정부와 한수원이 이 문제에 나서주기를 요청했고, 그때 대책으로 떠오른 방법이 이주였다. 주민들이 다른 지역에 가서 집을 구할 수 있도록 보상하고, 주민들이 떠난 집을 정부든 한수원이든 수용하여주기를 요청한 것이다. 그럴 때마다 정부는 사실상 주민들이 당하는 피폭이 기준치 미달이고 핵발전소는 안전하기 때문에 곁에 살아도 괜찮다고 답하곤 했다. 주민들의 요구가 거센 경우엔 보상기준이 없기 때문에 곤란하다고 딱 잘라 답하곤 했다. 보상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정부부처를 찾아가도 여러 부처를 이리저리 빙빙 돌게 만들 뿐이었고, 국회를 찾아가도 지방에 살아가는 적은 숫자의 시민들은 관심 밖이었다. 이들은 결국 한수원을 상대로 자신들의 피해를 인정받기 위한 집단 소송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사실상 정치적 여건에 법원의 판결은 좌우되었다.

오늘도 여전히 주민들은 상여를 끌고 있다. 2021년 상여시위 7주년을 맞으며 주민들은 7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진행했다. ‘간절히 바라옵건데, 이주’, 행사의 제목이었다. 아마도 매일 그 마음으로 7년을 꾸준히 상여를 끌었을 터였다. 김우창 작가는 주민들의 그 간절한 목소리를 이 책 속에 담아냈다. 그들 속에 들어가 함께 살며, 함께 피폭당하면서 말이다. 작년(2021년) 양이원영 의원이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하 발주법)을 대표발의 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하지만 그 이후로 법안이 통과가 되었다는 소식은 아직 듣지 못했다. 법안이 발의된 지 1년이 넘었는데도 말이다.

임준형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국장)
  • 바이블 25와 당당뉴스에 연재된 기고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