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기후위기 시대, 한반도 평화공존은 어떻게 가능한가

작성일
2022-09-13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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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는 전쟁과 폭압의 시대를 마치고 새로운 시대를 예비하는 이들에게 다음을 요구한다. “한 소리가 외친다. 광야에 주님께서 오실 길을 닦아라. 사막에 우리의 하나님께서 오실 큰 길을 곧게 내어라. 모든 계곡은 메우고, 산과 언덕은 깎아내리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하고, 험한 곳은 평지로 만들어라.” (사 40:3-4)

새로운 길을 내는 일은 높은 곳을 깎고 파인 곳을 메우며 거친 길을 평탄하게 하는 일, 즉 바닥을 고르는 일에서 시작된다. 평화의 길 역시 마찬가지다. 불의와 불평등의 현실 위에 고스란히 쌓을 수 있는 평화란 없다. 기후위기 시대, 평화공존을 위한 고민에 앞서 이 위기를 둘러싼 불평등의 문제, 정의의 문제가 먼저 논의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기후불평등과 공동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기후위기는 보편적이면서 동시에 차별적 위기이다. 전세계가 기후변화와 위기를 경험하고 있지만, 이 위기를 초래한 원인과 결과는 매우 불평등하다. 기후위기를 초래한 지구 위 온실가스의 약 70%가 세계 인구의 20% 이하인 선진산업국들에 의해 배출된 것이지만, 배출된 온실가스에 의한 피해는 온실가스의 약 3%만을 배출하는 저위도 개발도상국이 겪고 있다. 고도의 산업화를 이룬 나라들이 내뿜었던 탄소가 가난한 나라에서 사막화와 물부족, 가뭄과 홍수, 태풍 등을 유발하며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불평등은 국가간 관계에만 국한되지 않고, 지구 생태계의 다양한 관계들 간의 갈등과 분쟁의 요소로 급부상하고 있다. 부유한 사람들의 과도한 에너지 사용이 가난한 이들의 지하 단칸방을 위협하고, 경제적 성장과 풍요를 이루었다는 기성세대의 자부심은 생존가능한 환경을 걱정하는 미래세대의 불안과 충돌한다. 국경을 넘어온 각종 식재료로 차려진 도시인의 화려한 식탁은 식생의 변화, 수확량 감소로 인한 농어민의 고충을 외면하며, 화석연료로 부를 축적해왔던 기업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산업체제의 전환 요구 앞에서 노동자의 새로운 기술 습득과 일자리 이전을 고려하지 않는다. 이렇게 기후위기를 초래한 책임의 크기와 상관없이, 재난 상황에 대처할 힘과 자원이 상대적으로 적은 이들, 각종 사회, 정치, 경제적 불평등에 노출되어 있는 이들이 겪을 위협이 훨씬 크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린 기후위기의 본질이다.

기후불평등을 고려하여 유엔기후변화협약이 기후위기 극복 방안의 원칙으로 삼은 것은 '공동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ies)'이다. 이는 일차적으로는 누적 및 1인당 배출량, 경제발전 수준 등 서로 다른 국가 여건을 고려한 원칙이지만, 이 원칙은 서로 다른 민족과 계층, 계급과 인종, 성별과 연령 등의 조건하에서 역시 적용되어야 한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책임은 인류 모두가 나서야 할 일이지만, 그 책임의 분량을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기후정의의 차원에서 보는 한반도의 평화공존

기후위기 시대의 한반도 평화공존을 위한 고민 역시 기후정의의 맥락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북한은 대표적인 기후불평등의 당사국이다. 북한의 1인당 탄소배출량은 세계 130위(2019년 통계)로, 1인당 탄소배출량 세계 8위권에 드는 남한에 비해 기후위기를 초래한 책임 면에서 훨씬 적은 무게를 지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경험하는, 그리고 경험하게 될 기후위기의 위협은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재원과 인프라 등 대응 역량의 부족을 고려할 때 훨씬 강력할 수 있다. 그러므로 북한과의 기후협력 역시 “공동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현 정부가 대북정책의 주요과제로 삼은 것은 “그린 데탕트(Green Detente)”이다. 이는 남북간 환경분야 협력을 통한 평화롭고, 안전하며, 지속가능한 한반도 구현을 목적으로 한다고 한다. 문제는 기후문제와 평화공존을 둘러싼 상호노력과 협력이 남북의 생태계 회복과 보전, 그를 통한 평화공존 자체에 있는가, 아니면 기후위기를 기회 삼아 상호간 힘의 과시나 경제적 이익의 증진을 위한 전략적 협력에 있는가이다. 이는 이전 정부들이 비슷한 형태의 정책을 선언했고 실패했던 것을 고려할 때 반드시 숙고되어야 할 사항이다. 북한의 산림복구 지원, 환경인프라 구축 지원, 에너지 기술이전 등과 같은 경제적 차원을 포함한 지원과 협력은 기후정의의 측면에서 필요한 일이지만, 이를 실행하기 위한 조건으로 정치, 군사적 조건을 내세운다든지, 탄소배출권의 우선적 거래등과 같은 온실가스 감축 목적이 아닌 현재의 기후불평등을 고착화시킬수 있는 경제적 차원의 욕심을 낸다면, 이는 기후정의 실현과 궁극적 평화공존의 본래적 목표를 어렵게 만드는 길이 될 것이다. 이에 남북한 기후정의와 평화 구축을 위한 협력의 방향을 “공동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의 원칙을 고려하여 다음과 같이 제안해 본다.

1) 정치군사적 갈등, 경제적 손익계산을 벗어난 무조건적 지원과 협력

북한의 기후변화 취약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생태계를 비롯한 환경, 농업, 에너지 등 사회 전반의 역량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 이는 남한의 지원, 협력뿐 아니라 국제사회와 연계한 다자간 협력을 필요로 한다. 지난 정권들에서 남북 환경협력 시도들이 핵무기 포기나 경제지원 등의 선결조건으로 인해 어려움에 직면했던 경험을 기억하면, 기후정의 실현의 차원에서 보다 조건없는 협력과 다양한 경로를 통한 지원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설사 경성 안보이슈에서의 협의가 교착 상태에 빠지더라도 환경 지원, 협력사업들은 계속 추진되어야 한다.

2) 군사활동의 축소를 위한 상호 협력

정치군사적 갈등을 증폭시킬 뿐 아니라 기후위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군비증강과 군사훈련의 축소를 위한 남북한 상호 노력이 필요하다. 지구촌 곳곳에서 날로 증가되는 군사 활동은 기후위기의 주범 가운데 하나이다. 군비증강 경쟁은 기후위기 대처에 필요한 소중한 자원을 낭비하게 할 뿐 아니라, 기후 협력마저 어렵게 만든다.

3) 성장의 한계를 인식한 협력

인류가 현재 직면한 기후위기는 한정된 자연을 착취하며 대량 생산과 소비를 앞세워 무한 성장을 추구했던 자본주의 체제의 결과이다. 이는 기후위기 시대에 평화를 위한 모든 노력이 ‘성장의 한계’에 대한 인식을 전제해야 함을 의미한다. 자연에 대한 착취, 경제성장에 대한 욕망을 남북 모두가 내려놓을 때, 기후위기라는 공동의 과제 앞에서 남북간의 평화공존이 비로소 그 가능성을 드러낼 것이다.

한반도 탄소중립과 기후위기 대응 협력은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남북 평화공존을 위한 필수적 조건이다. 산림과 하천협력, 신재생에너지 협력, 탄소중립 협력 등 다양하고 창의적인 협력 의제가 ‘정의로운 방식’으로 개발되고 실행된다면, 이는 결국 한반도 평화 정착의 구심점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 이현아,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한국교회환경연구소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