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그것은 미래를 닮았다.

작성일
2022-07-07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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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미래를 닮았다.

<체르노빌의 목소리>,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김은혜 옮김, 새잎, 2019

한 부부의 이야기가 있다. 유명 HBO 드라마 체르노빌에도 등장했던 이야기, 체르노빌의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출동했다가 방사선 피폭으로 순국한 바실리 이그나텐코와 아내 류드밀라 이그나텐코의 이야기다. 드라마 체르노빌은 사고가 일어난 순간부터 사고의 해결 과정을 주로 담당했고, 핵사고의 진실을 드러냈던 한 핵물리학자 발레리 알렉세예비치 레가소프의 목소리를 주로 담고 있다. 그리고 소련 정부가 이 사고를 어떻게 덮고 무마하려고 했는지, 수습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피폭을 강요했는지 폭로한다. 그리고 바실리와 류드밀라의 이야기는 중간중간 이 사건의 참혹함을 드러내는 드라마의 장치로 사람들에게 보여진다. 그러나 책은 그것보다는 좀 더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데 애를 썼다. 저자는 언제나 역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직접 겪은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주목하여 책을 쓴 사람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 책에는 바실리와 류드밀라 외에도 수많은 이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사건을 직접 겪었던 이들, 고향에서 쫓겨나고, 피폭당해 죽어간 이들을 곁에서 지켜봐야 했던 사람들 이들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담겨있다. 체르노빌은 핵사고가 발생한지 36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누구하나 들어가 살 수 없는 땅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그들이 사용하던 침구며 대부분의 물건은 그곳에 남겨져 있다. 급히 떠나는 마당에, 그리고 얼마나 오염되었을지 모를 물건들을 가져갈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저 옷가지 몇 벌을 챙겨 떠나는 것이 전부였을 것이다. 평생 다시 돌아가지 못하리란 생각을 했던 이들이 얼마나 되었을까? 이 책에 담긴 이야기는 그곳에 남겨두고 오지 못했던 기억들이다. 물론 떠난 이후에도 이들은 여전히 참혹한 현실에 놓여야 했다. 체르노빌에서 생환했으나 자녀가 선천적 장애를 갖고 태어나는 경우가 많았고, 심각한 질병을 갖고 태어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체르노빌 출신이라는 말, ‘체르노빌레츠’라는 말은 심각한 차별을 낳는 말이 되기도 했다.

사고를 수습하던 이들이 있었다. 바실리와 같은 소방관들, 그리고 핵발전소의 꺼지지 않는 불을 끄기 위해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발전소 가까운 곳으로 가야만했던 군인들, 그리고 핵연료가 녹아내려 땅속으로 파고들어 혹시나 지하수를 만나 주변으로 심각한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녹아내리는 핵연료 아래를 파고들어가 조치를 해야 했던 광부들 말이다. 지금 두꺼운 강철 덮개를 덮어 사람의 접근을 막아놓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안전조치를 하기 위해 이들은 희생을 감내해야 했다. 이 책은 그들의 이야기도 들려준다. 물론 모든 이야기가 사실 희망 한줄 찾기 힘든 고통스러운 이야기라는 점은 동일하다.

기독교환경운동연대 독서모임에서 이 책을 함께 읽은 적이 있다. 함께 읽은 청년들이 입을 모아 했던 이야기는 너무 힘들다는 말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 글귀 하나하나에 담겨있는 이야기들이 실제 벌어진 일이고 참혹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읽고 싶지 않은 마음이 불쑥불쑥 치밀고 올라오는 것이 당연했다. 내가 HBO 드라마 체르노빌 1편을 보다가 사람들이 화재구경을 위해 고가도로 위에서 머물러 방사성 물질이 재가 되어 날리는 장면을 보고 꺼버렸던 그 심정과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외면하고 싶은 이야기들이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소개하고 권하는 이유는 아마도 ‘미래의 연대기’라는 부제와 이 짧은 글의 제목이 된 저자의 글 ‘나는 과거에 대한 책을 썼지만, 그것은 미래를 닮았다“는 말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초판이 후쿠시마 핵사고가 일어난 2011년에 발행되었고, 그 서문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아마 어떤 작가는 이미 후쿠시마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책을 쓰고 있거나 발간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과거를 써내려갔으나 그것은 미래의 연대기였고, 미래를 닮은 이야기들이 이미 과거에 펼쳐져 있는 듯한 풍경을 보았으리라. 그리고 핵발전이 지속되는 한 어디선가 어떤 우연한 계기나 재난이 결국 우리를 똑같은 미래로 끌고 갈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게 된다. 기술관료들이나 철없는 정치인들이 우리의 삶에 여전히 핵발전이 필요하다고 말하곤 한다. 그리고 탈핵하자는 말을 하는 이들을 철없는 존재로 몰고 가곤 한다. 그런 이야기들을 볼 때마다 소름이 돋는다. 어쩜 그리도 체르노빌 핵사고를 불러왔던 관료들과 정치인들을 그렇게도 닮았을까 하고 말이다. 그들의 철없는 이야기에 어쩜 그리도 많은 이들이 속아 넘어가는지 우리는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우리의 미래가 되지 않기를, 우리의 미래는 이 이야기와 다른 결말을 갖기를 간절히 바란다.

임준형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국장)
  • 6월 8일 바이블25와 당당뉴스에 게시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