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환경 캠페인

2. 슬로우패션 : 패스트 패션 대신 소박한 옷장과 새활용을

작성일
2021-04-29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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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매봉산 자락, 이곳은 예전에 서울시에서 사용하던 엄청난 양의 석유를 저장한 석유비축기지가 있던 곳입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 위기의 원인인 화석연료 문명의 성지와도 같은 곳이지요. 그런데 요즘 이곳은 문화비축기지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시민들이 함께 모여 지속가능한 삶, 생태적 문명을 모색하는 시민의 공간으로 새롭게 변신했습니다.

 

문화비축기지에는 서울이 지속가능한 도시가 되기를 꿈꾸며 일상 생활 방식을 바꾸는 특별한 시장이 정기적으로 열렸습니다. 생활용품을 고쳐 쓰도록 돕는 해결사들의 수리병원’, 싱싱한 채소와 건강한 요리를 판매하는 푸드마켓’, 아이를 키우는 가정이 필요한 물건을 공유하는 엄마들의 놀이터 마마프’, 아티스트가 만든 작품을 판매하는 지구레코딩X실크판인쇄’, 친환경 아이디어 상품을 파는 비전화 제품들’, 도시농부들이 친환경 농산물을 가져와 판매하는 가드닝마켓등 독특하고 재미있는 시장이 모두의 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열렸습니다.

 

유럽의 오랜 도시에는 플리마켓(벼룩시장, Flea Market)이 수시로 열립니다. 두 차례의 큰 전쟁을 겪은 유럽에서는, 어려운 살림살이 때문에 오래된 물건이나 골동품을 직접 사거나 팔 수 있는 동네 장이 있었는데요. 그런데 장이 열리면 동네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팔 때 세금을 매기려는 정부 관리들을 피해 이리저리 물건을 들고 뛰어다니면서 몰래 장을 열었다고 해서 벼룩시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웃기면서도 슬픈 이야기가 있습니다. 벼룩시장은 지금 나에게 필요 없는 물건을 버리지 않고 이웃들과 나누어 사용하려는 알뜰함과 배려의 정을 주고받는 나눔과 연대 공간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플리마켓이라는 이름보다는 아나바다 장터라는 이름이 조금 더 익숙할 것입니다.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는 구호의 앞글자를 모아서 만든 아나바다 장터가 열리면, 집에서 작아져 못 입게 된 옷, 아이들이 다 커서 가지고 놀지 않는 장난감, 팔리지 않아 재고로 쌓여 있는 낡은 물건, 다 읽고 쌓아둔 책들이 집에서 만든 맛난 음식과 함께 제각각 새 주인을 찾아 만나게 되지요.

 

기독교환경운동연대는 오래전부터 지구를 살리는 데 마음을 모으는 교회와 기독교단체들과 함께 교회의 아나바다 장터, 플리마켓인 초록가게를 기독교 환경운동의 차원에서 진행해왔습니다. 초록가게 운동은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 세계를 생각하며 물건들을 재활용, 재사용함으로써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 동산을 원래의 참 좋은(1:31) 모습으로 회복하려는 운동입니다. 교회에서 초록가게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 교우들이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기증하거나 교환해 갈 수 있도록 하는 작은 플리마켓, 아나바다 장터를 연 것이지요.


초록가게 운동은 단순한 재활용, 재사용을 넘어서 도움이 필요한 이웃과의 나눔을 실천하는 생명 살림 운동입니다. 초록가게로 모인 물건들은 정기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에게 전달하고, 초록가게에서 만들어진 수익금은 지역사회와 환경 선교를 위한 헌금으로 소중히 사용합니다. 어렵고 힘든 처지에 있는 이웃에게는 초록가게를 통해 저렴하게 구매하거나 후원받은 물건이 요긴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초록가게는 친환경 상품을 홍보하고, 재사용과 재활용을 통해 하나뿐인 지구를 살피며 생명 살림의 삶을 배우는 생명 경제로의 전환을 교육하는 강의실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초록가게에서는 농촌, 어촌, 산촌의 자매 교회에서 생산한 건강한 농산물을 나누고, 기독교 생활협동조합에서 판매하는 친환경 상품을 홍보하는 작은 생협 매장의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초록가게는 교회의 문턱을 넘기 어려운 교회 바깥의 마을 이웃이 자연스럽게 교회를 방문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모두의 시장, 플리마켓, 아나바다 장터, 초록가게. 각각 이름은 다르지만 모두를 아울러서 그린마켓이라고 칭하면 어떨까요? 그린마켓은 기후 위기를 심화시키고 환경을 파괴하는 무분별한 소비의 대척점에서 착한 소비를 가능하게 하여 지구를 살리는 가게입니다. 예수님은 성전 앞마당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셨습니다(19:45). 그 사람들은 성전관리와 결탁해서 성전을 찾아온 사람들에게서 제물 구입을 빌미로 돈을 뜯어내던 사람들이었지요. 예수님은 그들이 하나님의 집에서 강도질을 한다고 호되게 꾸짖으셨습니다(19:46). 하나님의 집은 이 땅의 여린 생명을 살리기 위한 기도가 이어지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린마켓은 기후 위기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창조 세계를 온전히 회복시키며 창조 세계에 깃들어 살아가는 모든 생명의 관계를 더욱 소중히 대하도록 하는, 삶으로 드리는 진실한 기도 처소입니다.

 

기독교 공동체가 당장 초록가게 매장을 만들기 어렵다면, 정기적으로 아나바다 장터, 플리마켓을 열어보면 어떨까요? 플리마켓에 장로님이 내놓은 책을 읽으면서 왜 여기에 밑줄을 그었을까 생각해보고, 권사님의 청춘이 깃든 레트로 원피스를 여성 청년들이 득템하면서 서로가 가진 물건과 그 물건에 깃든 기억을 공유한다면 자연스럽게 공동체가 한마음이 되고, 서로의 사정과 필요를 살피는 따스함이 넘치게 되지 않을까요? 또한 생명을 살리는 일, 창조 세계를 지키는 일에 부름 받은 기독교 공동체가 공동체 구성원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 지역 주민들을 위한 그린마켓을 운영하고, 또 지역의 그린마켓을 후원하는 일에 앞장선다면 모두에게 기독교 공동체의 따뜻하고 넉넉한 마음을 알리고 나누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 이 글은 '그린 엑소더스'(이진형 저, 기독교환경운동연대 편집, 삼원사 출간)에 실린 글입니다. 

- 책은 인터넷 서점이나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국을 통해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