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환경 캠페인

7. 생명경제 : 녹색투자와 사회적 경제를 활성화합시다.

작성일
2021-06-0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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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생명경제 : 녹색투자와 사회적 경제를 활성화합시다. 



이른 봄의 들판을 살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아직은 겨울의 기운이 남아 단단히 얼어붙어 있는 들판이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햇볕이 닿는 곳마다 노란 꽃다지꽃, 하얀 냉이꽃, 파란 봄까치꽃들이 찬바람을 피해 납작 엎드린 채 옹기종기 돋아나 있는 모습을 만나게 되실 거예요. 그냥 쓱 스쳐보지 않고 유심히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는 이 봄꽃들이 아이들 새끼손가락 손톱만큼 작디작은지라 몸을 낮추고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지 않으면 이 꽃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랍니다. 꽃다지꽃, 냉이꽃, 봄까치꽃은 정말 작은 꽃이지만 들판에서 가장 먼저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참 곱고 예쁜 꽃입니다.

 

큰 도시, 큰 집, 큰 차, 큰 냉장고, TV. 우리는 일단 큰 것이 좋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작은 것은 뭔가 부족한 것 같고 아쉬운 것 같고 가치가 낮은 것으로 생각하지요. 과연 그럴까요? 가장 먼저 있는 힘을 다해 봄을 알려주는 꽃다지꽃, 냉이꽃, 봄까치꽃이 목련꽃, 개나리꽃, 벚꽃보다 터무니없이 작으니 부족하고 아쉽고 가치 없는 꽃이라고 이야기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창조동산에서는 작고 큰 것은 서로의 다른 개성일 뿐이지 가치의 차이는 아니랍니다. 창조의 시간에 하나님이 큰 빛은 낮을 다스리고 작은 빛은 밤을 다스리라(1:16)고 하신 것처럼 큰 것은 큰 것으로 쓰임이 있고 작은 것은 작은 것으로 쓰임새가 있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뜻을 따르신 예수님은 오히려 큰 존재보다는 작은 존재에 더 큰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심지어는 너희 가운데서 가장 작은 사람이 큰 사람이다.”(9:48)라고 하시면서 작은 존재에 대한 더 큰 사랑을 숨기지 않으셨으니까요.

 

예수님처럼 작은 것에 유독 관심이 많은 사람이 또 있습니다. 에른스트 프리드리히 슈마허(Ernst Friedrich Schumacher, 1911~1977)는 독일에서 태어나 영국 옥스퍼드 뉴칼리지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22세에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경제학을 강의한 경제학자이자 환경사상가였습니다. 슈마허는 현대 경제 시스템이 추구하는 무한한 성장은 이룰 수 없는 환상이자 인류가 파멸로 향하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슈마허는 경제성장이 물질적인 풍요를 가져다준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환경과 인간의 본성이 파괴된다면, 경제성장을 지향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성찰과 반성의 대상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슈마허는 1973년에 출간한 그의 대표작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인류가 자연을 조작하고 지배할 수 있다고 믿고 발전시킨 과학기술이 생태 위기를 초래할 것임을 경고합니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중간 기술을 통해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선으로 바라보던 전통적인 경제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적정 규모의 경제를 설정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고도성장을 이어가던 당시 경제학계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을 했지요. 하지만 지금 기후 위기의 시대에 슈마허의 주장은 무려 반세기 앞을 내다본 예언자의 목소리였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만일 작은 것이 아름답다가 출간된 50년 전에 세계 경제학계가 슈마허의 주장을 진지하게 성찰하고 대안을 마련했다면 세계는 지금 기후 위기의 현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지 않을까요?

 

이러한 슈마허의 생태사상은 이후 전 세계의 환경운동과 대안적인 경제사상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작은 것은 큰 것이 되기 위한 준비 단계나 큰 것이 되지 못한 실패가 아닌, 생태 위기를 넘어서는 대안이자 지속가능성을 이루기 위한 지향으로 새롭게 주목받은 것이지요. 그래서 슈마허의 사상은 세계 여러 나라의 작고 다양한 생태 공동체 운동의 정신적 기반이 됩니다. 영국 다팅턴에는 슈마허의 정신과 사상을 기리는 슈마허칼리지(Schumacher College)가 설립되어 있어 지금도 전 세계의 지식인, 비정부기구(NGO), 교육기관, 지방정부의 정책입안자들과 활동가들이 이곳에 모여 순환경제, 로컬경제, 생태경제 등 새로운 경제담론과 인간과 지구 생태계를 이롭게 하는 적정기술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가 우리의 무분별한 소비로 인한 탄소배출에서 발생하기에 이제 우리는 기후 위기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 차원에서 작은 것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고 수용해야 합니다. 큰 집을 짓기 위해서는 작은 집을 짓는 것보다 더 큰 공간과 더 큰 자재가 사용되고 더 많은 냉난방 에너지와 유지비가 소비되는 것처럼, 큰 것은 작은 것보다 더 많은 자원과 에너지를 사용하고 소비합니다. 물론 무조건 큰 것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큰 것이 필요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의 필요와 상관없이 무조건 큰 것을 추구하는 것은 기후 위기 시대에 바른 선택이 아닙니다. 기후 위기 시대에는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큰 것을 가져도 될 만큼 넉넉하고 풍성하더라도, 지구 생태계 전체를 생각하면서 더욱 지속가능한 것, 적정한 것, 더 작은 것을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추구해야 합니다.

 

한편으로는 작은 것은 불편을 줄 수도 있습니다. 작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것들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작음을 선택함으로써 우리가 만나는 불편과 포기는 나를 포함한 지구 생태계 모두에게 불안과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라 평화와 안전을 나누는 상호의존의 과정입니다. 하나님은 이 창조 세계의 존재가 다른 존재를 위해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고 또 다른 존재가 내어준 곳에 자리를 잡고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지구라는 방주를 타고 서로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생명 공동체입니다. 작은 것에 익숙해지고 작은 것에 편안해짐으로써 인간은 지구 생태계의 수많은 생명의 다정한 이웃이 될 수 있습니다.


또 봄이 오면 들판에는 작은 꽃다지꽃, 냉이꽃, 봄까치꽃이 피어나겠지요. 꽃다지꽃, 냉이꽃, 봄까치꽃은 작은 모습 그대로가 참 예쁩니다. 작아서 예쁜 것은 아닙니다. 작은 것은 작은 것대로 큰 것은 큰 것대로의 아름다움이 있으니까요. 크든 작든 하나님의 창조동산에서 살아가는 모든 존재는 다 아름답습니다. 그래도 겨울에 봄꽃이 피고, 봄에는 여름 더위가 쏟아지는 요즘에는 작은 것이 큰 것보다는 조금 더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 이 글은 '그린 엑소더스'(이진형 저, 기독교환경운동연대 편집, 삼원사 출간)에 실린 글입니다. 

- 책은 인터넷 서점이나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국을 통해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