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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신앙 이야기
 
작성일 : 17-10-10 10:20
작은교회 그리고 녹색교회
 글쓴이 : 기독환경운동연대 (106.♡.5.238)
조회 : 215  
생태위기 시대의 교회 : 작은교회 그리고 녹색교회

이진형 목사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


1. 생태적 위기와 교회

불과 200년 전만 하더라도 하나의 생물종 자체가 지구상에서 모두 사라진다는 ‘멸종’은 무척이나 낯선 개념이었다.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은 오래 전부터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었고, 또 앞으로도 그대로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다. 어쩌다 발견되는 고대의 화석은 신화나 전설 속 괴물들의 이야기를 더욱 그럴듯하게 만들어주는 것이었을 뿐, 생물종이 모두 죽어 한 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존재할 자리는 없었다. 하지만 산업문명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는 너무나 자주, 그리고 너무나 익숙하게 ‘멸종’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에게 지금 지구상에 존재하는 포유류의 25%, 조류의 12%, 파충류의 25%, 어류의 33%인 1만7천여 종의 생물종이 멸종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소식이 아니다. 아마존 깊은 밀림 속의 개구리가, 알래스카의 유빙 위의 북극곰이, 양쯔강을 헤엄치던 분홍 돌고래가, 호주 연안 바다의 거대한 산호초가 멸종의 위기에 처해있다는 이야기는 주식이나 부동산 가격의 변화나 매일 열리는 운동경기의 결과보다도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단지 우리가 익숙해졌을 뿐이다. 오랜 시간 여러 차례의 위기를 겪었어도 생물종의 다양성과 풍성함을 꾸준히 이어왔던 지구의 역사에 비추어 볼 때 지금은 분명 ‘대멸종의 시대’이다. 우리는 이전의 그 어떤 사람들도 경험해보지 못한 ‘생태적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2,000여 년의 기독교 교회의 역사의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우리의 교회는 이전의 그 어떤 교회들도 경험해보지 못한 생태적 위기의 상황 가운데 존재하고 있다. 때문에 시대의 상황을 올바로 이해하고 그에 맞는 선교적 과제를 수행해야하는 교회에게 당면한 생태적 위기의 올바른 이해와 극복을 위한 노력은 무척 긴박하면서도 중요한 일이다.
지금의 생태적 위기는 인간 문명의 산업화가 빚어낸 지구 생태계의 변화로 일어난 일이다. 산업화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어울려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지구를 인간을 위한 자원으로 사용하는 일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산업화가 진행되는 동안 인간은 자원 획득을 위해 개발이 가능한 지구의 거의 모든 지역을 파헤치고, 다른 생명체를 아무 거리낌 없이 자원으로 이용했다. 그 결과 오랜 시간에 걸쳐 섬세하고 촘촘하게 만들어진 지구 생태계의 균형이 순식간에 무너지면서 생물종의 멸종을 촉발시키는 지구 생태계 붕괴의 위기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산업화는 지구의 무한한 자원을 사용하여 무한한 성장이 가능하다는 경제학의 ‘성장에 대한 신념’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산업화가 진행된 지난 200년 동안 자본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체제를 막론하고 인간의 문명은 성장에 대한 신화 위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결국 인간의 성장에 대한 맹신이 우리 스스로를 지구적인 생태적 위기, 생명체들의 대멸종의 파국으로 이끌어온 것이다.
성장에 대한 신념이 지구의 생태적 위기를 불러일으킨 그릇된 신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무한한 성장이 지향하는 폐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성장에 대한 지향을 내면화하는 일에 앞장서왔다. 산업화 기간 동안 교회는 성장을 지지하는 신학을 구성하고, 성장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성서를 해석하며, 성장의 시스템에 적합하도록 교회를 조직했다. 역사학자 린 화이트가 ‘생태적 위기의 역사적 근원’이라는 글에서 “서구의 과학기술에 의한 자연 파괴가 신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을 이용하도록 허락했다고 믿었던 성서적 자연관에 기인한다.”고 지적했던 것처럼, 성장의 신앙에 사로잡힌 교회는 하나님을 계시하는 또 다른 성서인 자연을 성장을 위해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전락시켰다. 성장에 눈이 먼 교회는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돌보고 지키는 존재라는 성서의 본뜻을 철저히 외면하고 창조세계를 약탈하고 파괴함으로써 얻게 되는 물질적인 성장을 하나님의 축복의 지표라고 믿도록 가르쳐온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직면한 생태적 위기로 인해 성장의 신념에 기반한 우리의 문명이 큰 문제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우리의 교회가 성장의 신앙에 영합함으로써 본디 교회가 있었어야 할 자리로부터 터무니없이 멀어져버렸음을 깨닫게 되었다. 때문에 지금 우리는 대멸종의 파국으로 인간의 문명과 현재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종의 역사가 끝나기 전에 ‘생태적 회심’을 통해 끝없는 성장을 지향하는 산업 문명을 생태계의 조화와 균형을 우선하는 생태적 문명으로 전환시켜야 하는 중요한 과제를 안고 있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는 성장 신앙에 물들어 있는 신학과 교리, 그리고 교회 자체를 창조세계의 본모습과 창조세계의 원리를 구현한 생태적 신앙으로 재조직함으로 탈성장을 지향하는 교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 바로 그 자리에 작은 교회가, 그리고 녹색 교회가 있는 것이다.


2. 생태적 회심의 교회

기독교 신학은 ‘인간중심성’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특별한 존재로써의 인간, 자연을 정복할 수 있는 특별한 권한을 부여받은 인간만이 신학의 주체였고, 자연은 인간의 발 아래에서 인간의 특별함을 드러내는 대상일 뿐이었다. 인간과 함께 창조되어 창조세계를 구성하는 자연을 철저하게 배제시키고 소외시키는 신학 위에 서있던 교회 역시 교회 안에 자연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지 않는 인간중심적 교회일 수밖에 없었다. 인간중심적인 교회는 단지 자연을 배제하고 소외시키는 것에 머물지 않고 자연 대한 착취와 학대, 나아가 인간들 사이에서의 배타적인 차별을 합리화하고 독려하는 일에 앞장섰다. 그리고 결국 교회는 성장의 신념과 손을 잡고 권력과 힘, 물질적 풍요에 대한 끝없는 욕망을 전파하고 성취하는 성장 신앙의 성전이 되어버렸다. 하늘에 닿을 듯 높이 솟은 뾰족한 십자가 탑과 주변의 지형을 제압하는 장엄하고 거대한 예배당이 상징하는 바는 교회는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지배하도록 특별한 힘을 부여받은 존재라는 것이었다.
생태적 위기 시대의 교회는 이러한 인간중심의 신학, 성장의 신념에 경도된 신학을 거부하고, 생태계의 위기가 인간을 위한 신학에 기인했음을 고백하고 반성하는 ‘생태적 회심’에 신학의 새로운 기초를 세워야 한다. 성장의 신념에 경도된 교회의 신학은 인간만의 구원을 고민하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기후변화, 자연파괴, 핵발전, 유전자조작과 같은 지구적인 생태 정의의 문제는 인간의 성장을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 부차적인 문제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기실 부차적인 것은 중심이 아닌, 지구의 생태계의 한 부분으로 창조된 하나의 존재인 우리들 인간이다. 노아의 방주가 노아의 가족만을 위해 설계되지 않았듯이, 지구는 인간만을 위해 설계되지 않았다. 생태적 회심의 신학은 하나님께서는 노아가 만든 방주를 이용해서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구원하려고 하셨음을 기억하고 노아의 가족들만이 아니라 방주에 함께 타고 있는, 한 배를 탄 모든 생명들을 동등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네가 어디에 있느냐?”는 하나님의 물음에 먼저 지구라는 생태계 안에 인간이 서있는 자리를 돌아보고, 인간의 지식과 능력을 통해 창조세계를 돌보고 지키는 인간의 본연의 자리로 돌아서게 하는 것이 생태적 회심의 신학이다. 생태적 회심의 신학은 기후변화로 멸종의 위기를 맞는 열대우림의 개구리, 공장식 축산 농장에서 40일을 살다 도축되는 닭, 폭력적인 유전자조작기술로 살충성분을 품고 자라는 GMO 옥수수, 댐으로 막혀 거대한 죽음의 호수가 되어버린 강, 관광개발을 위한 케이블카 설치로 망신창이가 되어버린 산의 구원을 다루는, 지구에 존재하는 생명 하나하나와 더불어 생명 전체를 아우르는 신학인 것이다.
생태적 회심의 신학은 하나님의 손길로 창조된 모든 존재를 직관하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이루시는 역사를 발견하는 것이어야 한다. 신학이 인간중심의 관념으로부터, 성장의 신념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어서 인간만의 구원이 아닌, 지구 생태계 모두의 구원과 영원한 존재로의 거듭남을 주제로 삼을 때 비로써 신학은 우리가 창조세계라고 고백하는 지구와 지구에서 살아가는 생명 전체를 정의롭게 아우르게 될 것이다. 때문에 생태적 회심의 신학은 전통적인 신학의 틀과 논의에 머물 것이 아니라 각각의 생물종과 온생명의 존재 이유를 밝히는 과학적 지식, 물리학, 화학, 생물학, 생태학, 지질학, 기후학과의 진지한 대화를 통해 새로운 신학의 자리를 모색한다. 지구신학자 토마스 베리 신부는 그의 책 ‘위대한 과업’에서 산업혁명 이후 과학과 기계 기술의 오용이 생태계를 파괴하였지만, 인간과 자연과의 올바른 관계를 설정해줄 수 있는 적절한 우주론을 통해 인간중심주의적 문명을 생명중심주의적 문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처럼 생태적 회심의 신학은 현대의 과학과 대화를 나누며 창조세계인 지구와 생명의 존재의 본질에 다가섬으로써 생태적 위기를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문명, 생태적 삶의 기반을 만드는 신학이 되어야 한다.
생태적 회심의 신학이 생태적 신앙의 삶으로 구현되는 자리는 ‘생태적 회심의 교회’가 서있는 자리이다. 생태적 회심의 교회는 생태적 위기에 직면한 창조세계의 생명과 평화를 이루는 일, 생태적 정의를 세우는 일을 교회의 주된 사명으로 받아들이는 교회다. 생태적 회심의 교회는 인간중심적, 성장중심적 문명을 넘어서는 생태적 문명이 시작되는 곳이다. 생태적 회심의 교회는 가장 먼저 교회 자체의 존재 양식에 있어 인간중심성과 성장지향성을 배제하고 생태적 적합성과 지속성을 중심에 두게 된다. 교회가 먼저 생태적 원리에 따른 삶을 경험하고 체득하는 공간이어야 교회가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생태적 정의를 이루게 하는 것과 생태적 문명을 선포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에른스트 프리드리히 슈마허는 1973년에 출간한 그의 책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현대 자본주의 경제가 추구하는 무한한 성장은 환상이자 인류가 멸망하는 길이라고 이야기했다. 슈마허는 자연을 조작하고 지배할 수 있다고 믿는 과학기술이 생태적 위기를 만들 것임을 경고하고, 중간 기술을 통해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선으로 바라보던 전통적인 경제의 패러다임을 버리고 적정한 규모의 경제를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슈마허의 생각은 이후 생태주의 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고, 작은 것은 큰 것이 되기 위한 준비 단계나 큰 것이 되지 못한 실패가 아닌, 생태적 위기를 넘어서는 지속가능성을 이루기 위한 지향으로 새롭게 주목을 받게 되었고, 세계 각 나라의 다양한 생태공동체 운동의 정신적 기반이 되었다. 생태적 회심의 교회 역시 권력과 힘에 집착하지 않으며, 생태적 한계를 넘어서지 않는 적정 규모, 유기적 관계성이 성립하는 적정 규모를 지향하게 된다. 교회가 창조세계에 생태적인 부담을 주지 않는 적정한 규모이어야 교회가 생태적 공동체로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고, 교회 공동체 안에서 창조세계 본래의 모습인 유기적 상호의존적 관계, 생명의 그물망을 온전히 유지하기 위해서도 공동체가 일정한 규모를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오규훈 교수는 그의 책 ‘153 교회’에서 요한복음 21장 11절의 베드로가 잡아 올린 물고기 숫자인 ‘153’을 교회의 적정 규모의 차원에서 해석하면서, 뇌과학과 인류학, 사회학, 경영학을 통해 뇌의 크기와 사회지능의 관계, 사회관계와 공동체 규모의 상관성, 경영의 효율성과 규모의 관계에서 적정한 교회의 규모가 150명을 넘지 않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면서, 150명이 넘지 않는 작은 교회가 가장 아름답고 성경적인 신앙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153 교회의 핵심은 교회가 대형 교회가 되려는 성장신화에 빠져 방향을 잃고 헤맬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현실적으로 적정한 규모를 지향해야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153 교회는 생태적 회심의 교회가 지향하는 점과 맞닿는 점이 있다. 결국 분명한 것은 성장의 신화로부터 벗어난 교회는 필연적으로 작은 교회로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작은 교회가 생태적 문명을 이루는 생태적 회심의 교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작은 교회라는 존재 양식에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게 된다.


3. 생태적 원리의 교회

교회가 단순히 규모가 작다는 것만으로는 교회의 생태적 회심의 온전성을 다 담아낼 수 없다. 생태적 회심은 단순히 이전의 인간 중심성, 성장의 신념으로부터 벗어나는 것만이 아니라 생태적 삶, 생태적 문명을 만듦을 통해 생태적 정의를 회복하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생태적 삶과 생태적 문명에 관한 정확한 인식과 철저한 지향을 바탕으로 하는 ‘생태적 원리’에 충실한 교회가 되어야 생태적 회심의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생태적 회심의 교회가 이루고자 하는 생태적 문명이 과연 어떤 것인가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교회가 이루고자 하는 생태적 문명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야 할 것인가에 관련해서는 ‘Web of Creation’에서 제시한 6가지의 ‘생태 정의의 원리’을 통해 자세히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1. 고유한 가치 원리 :
온 우주와 지구 안에 있는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 정체성과 고유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2. 상호연결 원리 :
지구 생태계는 상호연결 된 생명들이 상호의존적으로 존재하는 공동체이다.
3. 목소리 원리 :
지구는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살아 있는 주체 또는 실체이다.
4. 목적 원리 :
지구의 모든 존재는 우주 사건의 우연한 산물이 아니라 역동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
5. 상호보호 원리 :
지구는 지구 생명공동체의 다양성과 조화균형을 지속하기 위하여 상호보호의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6. 저항 원리 :
지구와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은 함께 고통을 당고 있고 함께 불의에 저항하고 있다.

‘생태 정의의 원리’ 가운데 첫 번째 원리는 온 우주와 지구 안에 있는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 정체성과 고유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고유한 가치의 원리’이다. 인간중심적 관점에서는 고등한 생물인 인간의 삶에 더 많은 도움을 주는 것들에게는 더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인간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은 그다지 큰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은 큰 가치를 얻기 위해 작은 가치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지배구조로 작용하며, 인간을 위한 자연의 이용을 합리화하는 체제의 기반이 된다. 하지만 실제 지구 생태계는 인간중심적인 가치에 따라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지구의 모든 존재는 지구 생태계를 구성하는 조각들이기에 각각의 자리에서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고유한 가치의 원칙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인간주의적인 관점에서의 해방, 생태적 관점으로의 전환이 시작된다.
고유한 가치의 원리는 생태적 회심의 교회가 작은 교회를 지향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성장주의적 시각에서는 작은 교회는 큰 교회로 성장하기 위한 미숙한 단계일 뿐이지만, 생태적 시각에서 작은 교회는 이미 작은 교회로의 정체성과 고유한 가치를 지닌 온전한 교회이다. 교회사를 돌아볼 때 본디 교회는 작은 교회로 출발하였으며 규모와 상관없이 교회로써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각각의 자리에서 필요에 따라 존재해왔다. 오늘날에는 작은 교회는 작음, 탈성장을 지향함으로써 큰 교회를 바라는 성장 지향의 교회가 포기한 예수 신앙의 역동성과 저항성을 간직함으로써 교회의 본래의 가치를 지켜가고 있다. 작은 교회는 작은 교회를 지향함으로써 고유한 가치를 간직하게 되며, 작은 교회라는 고유한 가치에 대한 분명한 자의식을 가지고 있을 때 비로써 작은 교회가 생태적 회심의 교회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생태 정의의 원리’의 두 번째 원리는 지구 생태계는 상호연결 된 생명들이 상호의존적으로 존재하는 공동체라는 ‘상호연결의 원리’이다. 지구는 자연법칙에 따라 통제되는 단순한 기계적 구조물이 아니다. 지구 안의 모든 존재는 유기체적, 생태적인 순환의 연결고리로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이러한 상호의존을 더욱 고도화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인간도 지구 생태계의 한 구성원으로서 상호의존의 관계 안에 있는 존재이다. 상호연결의 원리는 지구에 있는 모든 존재들의 속성이자 지향이다.
작은 교회는 끝없는 규모의 성장을 통해 나 홀로 존재할 수 있다는 성장의 환상으로부터 벗어난 교회이다. 작은 교회라 할지라도 독자적인 의사결정구조를 가진 하나의 공동체로서의 완결성을 가지고 있지만, 작은 교회가 지향하는 작음 안에는 대형 교회가 가지고 있는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완결적인 조직을 모두 담을 수 없다. 대다수의 작은 교회가 자신의 작음을 교회의 고유함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부족함으로 인식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때문에 작은 교회는 상호의존적인 연대와 협력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성장을 추구하는 기존 교회들의 연대와 협력을 위한 조직인 시찰회-노회-총회, 지방회-연회 구조에서는 상호의존성을 전제로 존재하는 작은 교회의 존재가 불편한 것이 되고 만다. 성장 지향의 교회들 안에서는 작은 교회의 고유성이 온전히 드러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부족함이 부각되며, 작은 교회는 연대와 협력의 주체가 아닌 지원과 호혜의 대상이 되고 만다.
때문에 작은 교회는 다른 작은 교회들, 혹은 작은 지역 공동체와의 유기체적인 연대와 협력 관계 속에서 작은 교회의 완결성이 이루어진다. 때문에 새 술이 새 부대에 담겨야 하듯이 작은 교회는 서로의 부족함을 서로가 채우는 새로운 차원의 연대,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협력을 위한 운동을 필요로 하게 된다. ‘작은 교회 운동’은 단순히 대형교회의 문제와 폐해를 넘어서거나 작은 교회가 필연적으로 갖게 되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작은 교회 운동은 지구 생태계의 속성인 상호연결의 원리에 따라 작은 교회의 유기체적인 연대와 협력 관계를 만들어감으로써 생명과 평화를 지키는 공동체라는 교회의 본질을 지키는 일이다. 상호연결의 원리 안에서 작은 교회는 서로 다른 다양성을 간직하지만 하나 된 교회, 창조세계의 방주의 역할을 감당하는 에큐메니칼 교회로 존재하게 된다. 
‘생태 정의의 원리’의 세 번째 원리는 지구는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살아 있는 주체 또는 실체라는 ‘목소리 원리’이다. 지구와 지구의 모든 존재는 그 자체의 인격과 영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듣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할 뿐, 지구 공동체는 탄생하던 그 순간부터 축하해야 할 일은 물론 불의에 맞서야 할 때에도 계속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구와 지구의 모든 존재를 대상이 아닌 나와 같은 주체로 인정하고 지구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데에서 생태적 정의가 시작된다. 목소리의 원리는 지구 공동체의 일원들이 서로를 향해 가져야 할 태도인 것이다.
본디 예수가 선포한 복음이란 것은 한낱 변방의 작고 작은 목소리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작은 목소리를 불편해했던 커다란 권력을 지닌 무리들에 의해 예수는 십자가형으로 죽음을 당했고 서둘러 매장되어 버렸다. 하지만 예수의 작은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았고, 예수는 그리스도가 되어 오늘날까지 작은 목소리를 선포하고 있다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 간직한 이야기이다. 때문에 본질적으로 교회는 작은 목소리를 소중하게 듣고 전하는 공동체이다. 작은 교회야말로 작은 목소리를 더욱 생생하게 되살려 증언하는 데 가장 적합한 교회이다. 오늘날 다른 그 어느 곳보다 작은 교회들 안에서 비정규 노동자의, 소외된 농민들의, 해고 노동자 가족들의, 송전탑으로 고통 받는 이웃들의, 쫓겨난 철거민들의, 눈물 흘리는 세월호 가족들의 떨리는 여린 목소리가 멈추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작은 교회는 작은 목소리를 소중히 여기며, 작은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작은 목소리를 끊임없이 세상에 전함으로써 생태적 회심의 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작은 교회는 성문 밖에서 세상의 큰 목소리에 묻혀 사라지는 작은 목소리를 간직한 이들을 성 안으로 초대하는, 작고 약하고 여린 존재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그들의 인격과 영성을 회복시키는, 생태적 정의를 선포하는 공동체인 것이다.
‘생태 정의의 원리’의 네 번째 원리는 지구의 모든 존재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우주적인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목적의 원리’이다. 지구 생태계는 각각의 목적을 가진 존재들이 모인 커다란 목적을 이루고 있는 목적을 가진 존재다. 작은 교회는 우주로부터 부여된 작은 교회만의 목적이 있다.
지구의 생태계는 오랜 시간을 지내면서 큰 생명체로부터 작은 생명체의 다양성을 만드는 방향으로 성장해왔다. 자연사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때 작은 교회는 큰 교회로 성장해야하는 낮은 단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큰 교회가 나아가야야 할 완성된 모습의 교회이다. 작은 교회는 작은 교회로써 존재하는 이유와 목적이 있다. 작음으로써 존재하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작은 교회 안에는 작은 교회만의 사명을 감당하는 즐거움과 기쁨이 있다. 작은 교회는 숨은 보화를 찾듯이 작은 교회의 목적을 발견하고 깨닫고 그 일에 헌신함으로써생명의 잔치를 열게 된다. 작은 교회는 자신의 목적 안에서 생태적 회심의 교회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생태 정의의 원리’의 다섯 번째 원리는 지구는 지구 생명공동체의 다양성과 조화균형을 지속하기 위하여 상호보호의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는 ‘상호보호의 원리’이다. 전통적인 청지기 모델은 지구 생명공동체 안에서 인간이 담당해야 할 역할을 이야기하지만 여전히 인간중심적이고 위계적 질서를 반영한다. 그러나 인간은 단지 지구 생명공동체의 일원으로 그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은 깨어있는 청지기일 뿐 생태계의 보호를 받는 존재다. 상호보호의 원리는 작은 교회의 연대와 협력의 의미를 알려준다.
요한복음 12장 24,25절에서 예수는 밀알의 비유를 통해 씨앗이 죽어 살아있는 식물이 되어 많은 씨앗을 맺는, 한 개체가 죽음으로 분해되어 다른 개체에 생명을 더하는, 생명의 확장과 영속의 과정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다. 그리고는 자신의 생명을 올곧이 십자가에 내어줌으로써 정의와 평화의 하나님의 나라 운동에 생명을 불어 넣는 한 알의 밀알이 되심으로 그리스도가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가르치신 것은 내가 나라는 자아로 삶과 죽음이 별개로 존재하는 세계에서 살아간다는 허상에서 깨어나,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서 확장과 영속을 거듭하는 영원한 생명으로 살아가는 실제의 모습을 깨닫는 길이었다. 이 길은 우리가 먼 미래의 어느 날의 영원한 삶을 위해 살아가는 지옥으로부터 벗어나, 한 순간 지금 여기 우리에게 허락된 생명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천국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상호보호는 작은 교회가 연대와 협력을 통해 서로에게 얻는 선물이다. 연대와 협력으로 내 교회가 어려움을 겪어도 다른 필요한 교회에 힘이 된다면 그것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이 생태적 회심의 교회의 모습이다. 상호보호의 원리에 따라 작은 교회는 더 큰 것, 더 많은 것이 아니라 더 다양한 것, 더 조화로운 것을 지향하게 된다. 이를 통해 비로써 작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되는 것이다.
‘생태 정의의 원리’의 여섯 번째 원리는 지구와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은 함께 고통을 당하고 있고 함께 불의에 저항하고 있다는 ‘저항의 원리’이다. 지구와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은 인간의 불의로 인하여 함께 고통을 당할 뿐만 아니라, 정의를 이루기 위해 함께 저항하고 있다.
상호보호의 원리로 하나가 된 작은 교회는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신비를 함께 체험하며, 창조세계 안에 살아감을 함께 기뻐하며, 이루어지고 있는 세계의 창조에 동참함을 함께 감사하게 된다. 작고 여린 생명들이 작고 여림으로써 전능하신 하나님의 모습이며, 외롭고 아픈 생명이 외롭고 아프셨던 예수 그리스도이며, 철을 따라 꽃이 피고 새가 우는 온 생명의 존재 양식이 바람과 같은 성령임을 깨닫게 된다.
마찬가지로 작은 교회는 창조세계의 아픔을 함께 괴로워하며, 창조 세계 안의 생명의 죽음에 함께 눈물 흘리며, 창조세계의 회복을 위한 거룩한 싸움에 함께 분노하며 동참하게 된다. 기후변화로 더욱 거대해진 쏟아지는 비바람과 천둥번개 속의 분노하시는 하나님, 멸종하는 생명체들과 함께 말없이 죽어가는 예수 그리스도, 녹조로 썩은 강물, 미세먼지로 텁텁한 바람이 되어 생기를 잃은 성령을 바라보게 된다. 이 자리가 바로 인간 중심을 벗어난 생태적 회심의 교회의 자리이다.


4. 녹색교회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생태적 회심의 교회는 생태계 위기의 시대에 성장의 신념에 물들어있는 신학, 영성, 교회의 재구성을 통해 창조세계를 지키고 돌보는 공동체인 교회의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려는 탈성장 교회를 향한 운동으로부터 출발한다. 교회사를 살펴보면 작은교회 운동을 비롯하여 교회가 조직화, 권력화 되는 과정에서 교회의 본래의 모습을 고민했던 수많은 교회들의 탈성장 교회를 향한 다양한 시도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 가운데 산업화와 성장 지향의 교회의 확산이 단기간에 이루어진 현대 한국사회 안에서, 한국의 산업화가 빚어낸 생태적 위기와 교회의 성장 지향에 대한 반성으로 시작된 ‘녹색교회’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생태적 회심의 교회의 구체적인 모습을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에서 녹색교회라는 명칭과 개념을 가장 먼저 사용한 곳은 한국공해문제연구소로부터 출발한 한국교회환경연구소와 기독교환경운동연대이다. ‘하나님 자연 사람 그 창조의 숨결 : 기독교환경운동연대 25년사’에서 성백걸 교수는 기독교환경운동연대가 녹색교회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992년 리우환경회의 이후 각 지역, 국가, 도시별로 환경보전을 위한 의제를 만들어 환경운동을 펼쳐나간 것에 영감을 얻어 1997년에 ‘녹색기독인 21’의제로 ‘녹색 10계명’을 만들게 되면서라고 이야기한다. 이듬해인 1998년에 기독교환경운동연대는 ‘녹색교회 21 의제’로 ‘녹색교회 10계명’과 녹색교회의 다짐을 담은 ‘녹색교회 10개 다짐’을 만들어 한국교회에 알리기 시작했다. 기독교환경운동연대가 제안한 녹색교회 21은 ‘생명위기 시대에 환경적으로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사회, 즉 새 하늘과 새 땅을 위해 교회가 해야 할 일을 초대교회의 신앙양식을 빌어서 표현한 것’으로, 환경운동이 교회의 신앙 운동이며 교회가 감당해야 할 선교적 사명임을 밝혀 환경운동을 교회 안에서 전개하는 근거가 되었고, 이는 이후 한국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녹색교회에 대한 이해의 기초가 된다.
그리고 생태신학에 관심을 가진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생태계의 위기 시대의 교회론을 재정립하려는 시도들이 있어왔다. '생태신학과 목회 생태계 위기 시대의 교회' 에서 장로회신학대학교 김도훈 교수는 “생태계 위기 시대의 교회는 생태영성적인 회개를 통해 자연의 아픔과 고통을 대신하여 외치는 교회”여야하며, 이러한 교회는 “창조세계를 돌보는 섬김의 역할을 감당하는 하나님의 백성, 피조세계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본받는 그리스도의 몸, 만물에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영인 성령의 전으로써 생태정의를 이루어 피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사역에 참여”하는 교회로 “생태계 위기 시대의 교회”를 새롭게 제시하며, 이러한 교회는 “자연 피조물들과의 하나됨, 자연에 대한 폭력을 거부하고 자연의 생명을 존중하는 거룩성, 자연 피조물에게도 복음이 유의미하게 하는 보편성, 자연 피조물들을 사랑하며 관계를 맺는 사도성”의 특징를 갖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생태신학과 교회론’ 에서 연세대학교 전현식 교수는 전통적인 교회론으로는 교회가 현재의 생태적 위기를 극복할 수 없는데, 그 이유를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공동체와 같은 교회의 전통적인 은유들로부터 해방적, 유기적, 공동체적인 생태적 가치와 통찰력을 얻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중심적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며, “인간중심성을 넘어 생태적 관점에서 교회의 정체성, 역할, 사명을 재구성한 교회”를 “생태교회, 생태적 교회”로 제시하며, 생태교회를 “인간중심성을 넘어서는 생태해방공동체, 생태정의를 실현하는 하나님의 집, 모든 피조물 안에 하나님의 임재와 창조의 신성을 확인하는 성육신, 모든 피조물이 자신의 기본적 필요를 공평하게 나누도록 초대받는 성만찬의 밥상공동체인 하나님의 몸의 사명을 수행하는 교회”로 이야기한다.
한편 ‘하나님나라 운동으로서의 녹색교회의 생명평화운동’ 에서 대전신학대학교 정원범 교수는 “세계의 빈곤과 생태계 파괴라는 생명의 위기를 야기한 자본주의와 소비주의”에 주목하며 “녹색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하나님나라 공동체”를 “녹색교회”로 규정하고, “생명 존엄성의 파괴에 맞서 생태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생명운동, 자연에 대한 폭력에 맞서 인간과 자연과의 올바른 관계를 이루는 평화운동인 하나님나라 운동”으로써 “녹색교회 운동”을 제안한다.
이와 함께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양재성 공동대표는 “생명과 평화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해 환경운동에 나서는 교회, 생명을 살리고 평화로운 세상을 세우는 교회”로, 한국교회환경연구소 유미호 실장은 “부활의 주님을 모시고 기뻐하며 잔치에 참여하는 예배와 생명을 살리는 선교, 생명을 양육하는 교육, 생명을 섬기는 봉사, 생명을 나누는 친교가 균형을 이루는 생명공동체”로, 기독교환경운동연대 홈페이지는 “교회 녹화, 초록 가게, 지구온난화 억제를 위한 실천, 생명밥상 빈 그릇 실천, 햇빛발전소 설치, 친환경 조명 십자가 등 교회의 녹색실천에 앞장설 뿐만 아니라 교회의 예배, 교육, 봉사, 운영 등 교회에서 이뤄지는 모든 일에서 창조질서 보전을 실천하는 교회”로, 예장녹색교회협의회는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보존과 생명문화운동에 앞장서는 교회”로 녹색교회를 이해하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처럼 녹색교회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 속에서 녹색교회는 생태적 위기라는 상황의 이해 속에서 전통적인 인간중심적 교회의 형태와 역할을 생태적, 생명 중심적 교회인 ‘생태적 회심의 교회’로 새롭게 전환하려는 시도 가운데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처럼 녹색교회가 분명한 지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결국 녹색교회가 작은 교회 운동과 마찬가지로 기존의 교회를 녹색교회로 바꾸어가려는 생명, 평화 운동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녹색교회는 작은 교회를 지향하고 있지는 않지만 내용적으로 성장의 신념을 거부하는 탈성장의 교회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점에서 작은 교회와 같은 길을 걷고 있으며 닿고자 하는 곳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앞으로 보다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는 녹색 교회 운동은 더욱 다양한 양상과 지향을 가지고 있는 작은 교회 운동 안에서 유기적인 상호 연결을 통해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5. 녹색교회 운동

녹색교회는 한국의 생태적 위기와 환경문제로부터 비롯된 생태, 생명 운동으로 시작되었다. 기독교환경운동연대는 지난 2006년부터 녹색교회 운동을 확대하기 위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함께 ‘녹색교회 10개 다짐’을 기준으로 녹색교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교회를 선정을 해왔고, 이렇게 선정된 교회가 2017년 현재 50개 교회에 이르게 되었다. 한국교회 전체의 숫자에 비할 때 50개 교회는 아직 턱없이 적은 숫자이지만 이 녹색교회들은 자체적인 교류와 협력을 통해 각각의 교단과 지역을 중심으로 녹색교회 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해 나가고 있으며, 한국교회의 생태환경 운동의 방향을 앞장서서 이끌어가고 있다.
아래의 ‘녹색교회 환경실천 점검표’는 녹색교회가 예배, 조직, 교육, 친교, 봉사의 영역에서 실천할 수 있는 생태환경 운동의 30가지의 구체적인 방안을 예시하고 있다. 예배에서는 환경주일을 중심으로 창조세계의 보전을 위한 설교와 기도를 포함한 예배 예식을 갖는 것, 교회교육에서는 생태환경을 주제로 한 성경공부, 사경회, 신앙교육을 하는 것, 교회조직에 있어서는 생태환경 부서의 조직과 헌금, 예산을 편성하는 것, 친교에 있어서는 교회 자체가 친환경적인 공간이 되는 것과 생명밥상운동을 통해 친환경적인 삶을 사는 것, 봉사에 있어서는 초록가게 운영, 재생복사지 사용, 지역사회와 생태환경 활동을 공유하는 것 등의 녹색교회 운동의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지침을 보여주고 있다.

제 1 다짐 | 우리는 만물을 창조하고 보전하시는 하나님을 예배한다.
환경주일, 환경선교주일 예배를 드린다.
예배에서 창조세계의 보전을 위한 말씀을 나눈다.
예식을 통해 모든 생명의 소중함을 고백한다.

제 2 다짐 |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사람과 자연이 한 몸임을 고백한다.
고통 받는 창조세계를 위한 기도의 시간을 갖는다.
자연으로 나가서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를 드린다.
텃밭을 가꾸거나 동식물을 기르도록 권면한다.

제 3 다짐 | 우리는 창조세계의 보전에 대하여 교육한다.
생태환경을 주제로 성경을 읽고 공부한다.
창조세계의 보전을 위한 사경회 및 특강을 갖는다.
단순하고 소박하고 검소한 삶을 살도록 권면한다.

제 4 다짐 | 우리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친환경적으로 양육한다.
교회학교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신앙교육을 한다.
교회학교 학생들에게 건강한 먹을거리를 나누어준다.
교회학교 학생들을 위한 녹색장터(아나바다 장터)를 연다.

제 5 다짐 | 우리는 생태환경을 살리는 교회 조직을 운영한다.
교회에 생태환경 관련 부서, 모임을 조직한다.
창조세계의 보전을 위한 헌금과 예산을 편성한다.
생태환경 담당자를 두고 관련 교육을 받게 한다.

제 6 다짐 | 우리는 교회가 절제하는 생활에 앞장선다.
순서지나 현수막 제작을 줄이고 행사를 간소하게 진행한다.
예배실 장식, 모임과 회의에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한다.
과도한 조명, 음향, 냉난방을 절제하고, 물을 아껴 쓴다.

제 7 다짐 | 우리는 생명밥상을 차린다.
안전한 생협, 친환경 식품을 이용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수입, 가공식품을 줄이고 제철 음식을 먹도록 권면한다.
건강한 음식을 남김없이 먹는 빈 그릇 운동을 교육한다.

제 8 다짐 | 우리는 교회를 푸르게 가꾼다.
교회에 작은 정원을 만들거나 화단, 텃밭을 가꾼다.
효율이 높은 전기기구를 사용하고 재생에너지 생산 설비를 설치한다.
자가용 대신 걷거나 자전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권면한다.

제 9 다짐 | 우리는 초록가게를 운영한다.
초록가게(재활용 장터)를 운영하고 환경관련 정보를 나눈다.
재생용지 복사지 등 친환경 상품을 구입하는 녹색구매를 권장한다.
도시교회와 농촌교회가 협력하는 농산물 직거래사업을 진행한다.

제 10 다짐 | 우리는 창조보전을 위하여 지역사회와 힘을 모은다.
지역 사회를 위한 생태환경선교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지역 사회의 생태환경 현안에 관심을 갖고 참여한다.
지역 사회의 생태환경을 회복시키는 활동을 진행한다.

녹색교회들은 지역 사회 안에서 각자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생태환경 실천과 운동을 이끌어가고 있다. 생태적 예배, 생태적 영성을 만들어가는 교회(신양교회, 오봉교회, 청지기교회 등), 자연학교를 열어 생태환경 교육을 지속적으로 갖는 교회(작은교회, 쌍샘자연교회, 푸른마을교회 등), 초록가게 운영을 통해 지역사회 안에서 착한 소비를 만들어가는 교회(백석교회, 고기교회 등), 농촌교회와 도시교회가 함께 건강한 농산물을 기르고 나누는 일을 하는 교회(들녂교회, 향린교회, 동면교회, 송악교회 등), 지역의 생태환경 문제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교회(지평교회, 주산교회, 황지중앙교회 등), 햇빛발전소 설치 등 교회의 에너지 절약을 위해 애쓰는 교회(청파교회, 산본중앙교회 등), 교회 안에 환경 부서를 만들어 교회 구성원들이 지속적으로 환경실천을 하도록 권면하는 교회(기쁜교회, 정읍중앙교회 등) 등의 다양한 형태의 생태환경 운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또한 교단별로 기장생태공동체운동본부, 예장녹색교회협의회, 감리교환경선교위원회 등의 조직을 구성하고 교단 안에서 환경선교 세미나, 환경선교 정책협의회, 생태환경 수련회 등의 활동을 통해 녹색교회 운동의 확대를 도모하고 있으며, 전체 녹색교회가 참여하는 환경주일 연합예배, 작은교회 한마당 녹색교회 분과모임, 기독교환경회의 등의 연합행사를 통해 녹색교회 운동의 교류와 협력을 이어나가고 있다. 또한 ‘녹색교회와 생명목회’ 다양한 현장을 바탕으로 ‘녹색교회론’의 토대를 만드는 이론적인 운동들을 병행해 나가고 있다.
이처럼 녹색교회 운동이 다양한 형태의 실천과 이론적 작업을 함께 병행하면서 운동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각각의 녹색교회가 생태정의의 원리에 따라 상호협력의 양상을 내재하고 있었던 것과 아울러, 각 지역의 녹색교회를 찾아내고 조직하여 녹색교회 운동의 기반을 지속적으로 세워왔던 기독교환경운동연대와 한국교회환경연구소라는 녹색 교회 바깥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녹색 교회 역시 작은 교회와 마찬가지로 각각의 교회의 자원과 기반이 취약함으로 인해 연대와 협력에 대한 필요는 강하게 느끼면서도 연대와 협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못하는 현실에 놓여있었다. 하지만 녹색교회와 협력단체가 함께 지속적으로 연대와 협력의 계기를 마련하고 다양한 연대와 협력의 구조를 만들어 나가면서 여전히 취약한 현실 가운데서도 녹색교회 운동의 기틀이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다. 이러한 녹색 교회 운동의 연대와 협력의 경험이 이제 작은 교회 운동에 있어서도 적절한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6. 작은 교회, 그리고 녹색 교회

지금 여기 우리들의 교회의 현실은 더욱 심화되고 있는 생태적 위기 가운데 있다는, 교회가 이 생태적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더 이상의 미래가 없다는 것이다. 교회가 전적으로 현재의 생태적 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이제 교회는 그동안 성장주의의 달콤한 열매에 취해 생태적 위기를 방조하고 막아내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지금 교회가 책임을 지지 않으면 훗날 우리의 자녀들은 책임을 질래야 질 수도 없을 것이다. 생명으로 풍성했던 지구는 영원히 사라지고 말 테니까.
먼저 우리들 교회가 인간 중심적인 성장을 향한 집념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고 있음을 돌아보아야 한다. 성장의 우상을 무너뜨리고 교회를 탈성장의 교회로 변화시켜 탈성장의 문명이 발원하는 지성소가 되도록 해야 한다. 탈성장의 교회는 몇 번의 선언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보다 철저한 현실의 인식, 그리고 그 현실을 넘어서려는 죽음을 불사하는 간절한 신앙적 실천이 예수 운동의 모습이었고, 교회 운동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따르지 않고 존재할 수는 없다. 이제 파국을 향해 더욱 속도를 내고 있는 생태적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생태적 회심을 동반한 교회 운동을 만들어내는 일은 우리의 교회와 생명의 지구에 있어서도 실로 생명을 걸어야 하는 절박한 일이다.
이 간절함 가운데 탈성장의 교회인 작은 교회 운동과 녹색교회 운동이 존재한다. 녹색 교회 운동과 작은 교회 운동은 이러한 간절함을 통해 앞으로 더욱 깊은 연대와 협력이 가능할 것이다. 두 교회 운동 간의 연대와 협력은 상호의존성을 높임으로 서로의 풍성함과 건강함을 만들어낼 것이다. 작은 교회는 녹색 교회가 될 것이고, 녹색 교회는 작은 교회가 될 것이다. 모든 교회는 창조 세계의 생명을 살리고, 생태적인의 정의를 지키며, 생태계의 평화를 이루는 작은 교회여야하며 녹색 교회여야 한다. 만일 녹색 교회와 작은 교회가 누구보다 먼저 서로를 바라보며 손을 내밀어 상호의존의 관계를 맺지 못한다면 녹색 교회 운동도, 작은 교회 운동도 서로의 한계에 봉착하고 말 것이다. 하지만 녹색 교회와 작은 교회 운동이 자기를 버리고 하나가 되는 또다른 교회 운동을 만들어낸다면, 우리와 지구의 간절함은 또다시 하늘과 땅을 잇는 무지개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이 글은 생명평화마당에서 발간한 '한국적 작은교회론'의 '탈성장교회로서의 작은교회와 녹색교회' 파트의 기고를 위해 작성한 초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