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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신앙 이야기
 
작성일 : 17-07-29 13:32
강의 회복과 복음, 그리고 하나님 나라
 글쓴이 : 기독환경운동연대 (175.♡.31.150)
조회 : 157  
170612기고_복음과 상황 7월호

강의 회복과 복음, 그리고 하나님 나라
유미호 / 한국교회환경연구소 연구실장

# 생명의 근원, 강

생명의 강. 생명을 살리는 강은 본디 흐르는 물입니다. 에덴에서 흘러나와 강으로 바다로 또 하늘로 다시 땅으로 흐르는 물입니다. 그렇게 흐르는 물이 맨 처음 에덴동산 시절부터 우리 생명의 근원이었습니다. 동산을, 그리고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생수였습니다.

“주 하나님은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열매를 맺는 온갖 나무를 땅에서 자라게 하시고, 동산 한가운데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 강 하나가 에덴에서 흘러나와서 동산을 적시고, 에덴을 지나서는 네 줄기로 갈라져서 네 강을 이루었다.” (창2:9~10)

우리나라도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이라고 불릴 만큼 강이 보기 좋게 흐르던 곳이었습니다. 특히 한강, 금강, 낙동강, 영산강 4대강은 우리나라 전 국토의 젖줄이 되어 지역주민들이 풍성한 삶을 살아가게 해주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물이 4대강 사업 이후 서서히 죽어갔습니다.


# 흐르지 않는 강, 강의 죽음

2009년부터 약 3년간 진행된 대규모 토목공사는 4대강의 모습을 완전히 바꾸어놓았습니다. ‘강, 하천의 생태계 보고였던 습지’, ‘뛰어난 경관을 자랑했던 곳’, ‘하천 수질 정화에 필수적인 모래톱’은 댐(보) 건설과 대규모 준설로 인해 한순간에 사라졌습니다. 최근 경향신문 미래기획팀이 실은 4대강 공사 전과 후의 모습을 대비한 사진을 보면 다른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사라진 것들이 무엇인지 알기에 충분합니다.
댐이 세워진 이후로 매년 강에 녹조가 창궐하고, 강은 썩어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있습니다. 물고기도 씨가 말라 어민들의 생계도 끊기게 되었습니다. 사업 전 잡히던 붕어와 메기, 정어 같은 토종 물고기들은 사라지고, 강준치와 블루길 등 오염된 강에 적응한 외래 어종만 잡히고 있습니다. ‘수질이 깨끗해지고 자연이 살아날 것이다’라고 했던 4대강 사업의 목적은 그 어디서도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물 속 상황은 더합니다. 최근 뉴스타파의 목격자 제작진에 따르면, 검은 오니로 범벅되어 전방이 한치 앞도 보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강바닥에는 버려진 폐선과 건설자제가 어지럽게 방치돼 있을 뿐 아니라 악취 가득한 개흙이 두텁게 쌓여 더 이상 모래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가라앉아 녹조를 모래가 흡착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이제 강은 더 이상 생수의 강이 아닙니다. 그냥 물을 마신다는 건 불가능해졌습니다. 독성을 내뿜는 녹조 때문인데, 그 독성은 수중의 모든 생물뿐 아니라 그 물로 농사를 지으면 농작물에도 축적됩니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명예교수인 김정욱 교수에 의하면, 미량이라도 장기적으로 먹으면 만성 피해가 생겨 많은 나라에서 남조류 녹조가 번성한 물은 상수원수로 안 쓴다고 합니다. 물고기도 잡지 않는 것은 물론입니다.
상황이 이러한데, 우리는 녹조 낀 강물에 황토나 약품을 뿌려 녹조를 없애려 했습니다. 배로 녹조물을 휘젓고 공기 주입장치를 다는 등의 방법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효과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남조류가 죽으면서 세포 안에 있던 독소를 밖으로 내보내서 문제가 커졌습니다. 때론 펄스방류로 해결하려 했지만, 그도 바닥에 가라앉았던 오염원을 떠오르게 해 오히려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막아서는 안 된고, 또 막힌 후도 다시 터야 한다”는 주장이 가장 쉽고도 온전한 답인 듯합니다. 모든 수문이 열려 물이 다시 흐르게 되면 강은 스스로 제 모습을 찾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 수문 개방, 강에게 복음

4대강의 아픔과 죽음 위에서, 에스겔 47:1~12의 말씀을 다시 읽습니다. 성전이 무너지고 포로 된 상황에서 에스겔은 하늘의 성전에 흘러나오는 물을 통해 회복되는 묵시적 환상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에게서 멈추었던 강이 다시 흐르고, 처음 창조되었던 동산이 이 땅에 다시 회복되는 꿈을 꿉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의 완성된 성전을 통해서, 우리는 다시 흐르게 될 강, 새 하늘과 새 땅의 비전도 봅니다.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고 나를 인도하여 강 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 내가 돌아가니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또 이 강 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그 진펄과 개펄은 되살아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겔47:1~12)

“또, 수정과 같이 빛나는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 강은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흘러 나와서, 도시의 넓은 거리 한가운데를 흘렀습니다. 강 양쪽에는 열두 종류의 열매를 맺는 생명나무가 있어서, 달마다 열매를 내고, 그 나뭇잎은 민족들을 치료하는 데 쓰입니다.” (계 22:1~2)

그간 4대강 댐 건설을 둘러싸고 우리는 강에 대한 왜곡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진짜 강의 생명을 보지 못한 채, 하나님이 모든 생명에게 공짜로 주신 강물을 자기 물인 양 댐을 건설함으로 그 흐름을 막아 강의 죽음을 초래했습니다. 생명은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강이 있어야 살아갑니다.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 지구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강이 있어야 살 수 있습니다. 그 강이 죽으면 생명 또한 죽습니다. 그래서 강이 중요합니다. 어찌 보면 강은 지구의 성소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습니다. 강이 있고 또 그 곳에서 흘러나오는 물이라야 생명이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이제 다시 강이 흐르게 되었습니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대통령은 4대강 사업 정책감사와 보 일부의 상시 개방을 지시했습니다. 물론 16개의 댐(보)이 아니라 낙동강의 고령보, 달성보, 창녕보, 함안보, 금강의 공주보, 영산강의 죽산보에만 해당하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6월 1일에 수문 개방이 있었습니다. 완전한 개방이 아니라 효과는 별로 없었지만, 강이 다시 흐르게 될 것이라는 꿈에 한 발짝 더 다가섰다는 점에서 기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애타게 흘러갈 수 있기를 바라고 있는 강에겐, 이번 수문 개방은 더 더욱 ‘좋은 소식’이요, ‘복음’이지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첫째 이유는, 강을 막아 독을 내뿜게 했던 인간의 탐욕에 경계선을 긋게 하는 생명의 복음입니다. “다시 천척을 측량하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한 말씀처럼, 우리가 넘어서는 안 될 경계를 보게 하는 말씀입니다. 경계선은 ‘우리가 지구에서 뽑아 쓸 수 있는 자원의 양의 한계이자 건드려서는 안 될 것에 대한 한계점’입니다. 설사 넘을 수 있다고 해도 넘어서는 안 될 ‘한계선’입니다. 넘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이고 오만입니다. 우리는 이미 지구 생태계 용량을 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1980년에 포화상태가 되었고, 2015년에 1.5배를 초과하였습니다. 2030년이면 2배에 달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탐욕스럽게 누리는 것은, 현재 고통 받고 있는 가난한 자, 미래세대, 그리고 자연에게 지는 빚입니다. 그러니 우리 삶의 경계선을 찾아 빚을 갚아가게 하는 것은 복음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둘째 이유는 ‘강 좌우편에 심히 많은 나무를 자라게 하는 생명의 근원지’를 봄으로 절망을 넘어서게 하는 필요의 복음입니다. 생명의 근원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적재적소에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해준다는 믿음에서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강의 곳곳에 필요로 하는 만큼의 물이 모였다가 흐르게 하셨습니다. 그저 물이 많다고 좋은 것은 아닙니다. 4대강 사업으로 가득 모여 있던 물은 아무 쓸모가 없었습니다. 가뭄이 드는 지역은 4대강 사업구간과 멀리 떨어진 산골 지역과 해안도서 지역에 흩어져 있는 곳이니 애초부터 필요를 채워준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홍수를 막기 위해서였다면 하류에 댐을 지어 수위를 올려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모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4대강 강변 농지에 산더미처럼 쌓아놓아서는 쓸모가 없습니다. 물을 정화하고 물고기들의 산란지로서의 역할을 하게 하려면 도로 강에 넣는 것이 맞습니다.
셋째 이유는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모든 생물이 살고 ... 강 좌우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 그 잎사귀는 약재료가 되리라’ 하신 말씀은 치유의 복음입니다. 강이 다시 흐르면 물이 다시 생명을 낳고, 그 잉태가 우리의 근원을 이루어갈 것입니다. 특히 물의 흐름을 따라 모래도 다시 흐르게 될 터인데, 모래는 단순한 무기물이 아니라 생명의 서식처가 되어줄 것입니다.


# 강의 회복과 하나님 나라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요7:37~38)

예수님 자신이 생수를 건네줄 수 있는 진짜 성전이라고 자기선언입니다. 이는 우리가 세워놓은 가짜 성전을 헐어야 진짜 성전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올 것이고, 그 강물이 우리 근원이 되고 또 세상의 땅을 풍요롭게 해줄 것이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4대강을 두고도 목마름을 느끼고 있다면. 우선적으로 강을 변형시킨 것부터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아야 할 것입니다. 그 곳이 생명의 근원지요, 모든 생명이 존재의 뿌리를 깊이 뿌리내려야 할 곳이기 때문입니다. 강에 댐을 그대로 둔 채로 생수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입니다, 오직 강을 다시 흐르게 해야만 생수의 강이 흘러 생명이 살아나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너희 모든 목마른 사람들아, 어서 물로 나오너라. 돈이 없는 사람도 오너라. 너희는 와서 사서 먹되, 돈도 내지 말고 값도 지불하지 말고 포도주와 젖을 사거라.” (사 55:1)

물론 그를 위해 또 한 번의 큰 공사는 필요 없습니다. 4대강 사업비보다 적은, 아니 ‘유지관리비보다 적은 예산만으로도’ 강은 회복될 수 있습니다. 본래 강물이 살아있는 모든 생명에게 공짜로 제공된 생수였으니 되돌리는 것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냥 강의 흐름을 막고 있는 댐만 걷어내면, 강은 스스로 갈 길을 찾아 흐를 것입니다. 오히려 공사를 최소한으로 해야만 제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냥 놔두면 지구상의 산봉우리와 계곡이 그렇고, 낮과 밤도 주기가 반복되는 낮과 밤처럼 구불구불 곡선을 그으며 흐를 것입니다.
댐이 세워져 강물이 직선으로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쉼 없이 일하고 지속적인 성장만을 원하며, 땅도 쉬지 않고 경작하게 하여 지력을 떨어뜨려 놓듯이. 비록 느릴지라도 강물이 스스로 제 길을 찾아가도록 하면, 강물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까지 가 닿을 것입니다. 아파하고 죽어가고 있는 생명들을 어루만지면서 치유하고 회복시켜낼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모두가 골고루 ‘그 배’에서 흘러나오는 강의 생수를 마시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도 강을 따라 흐를 수만 있다면 조화로운 삶을 살아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모든 생명과 조화를 이룸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참 좋은 삶’을 살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 강아 흘러라, 나도 따라 흐른다

우리 몸의 70퍼센트가 물입니다. 지구 또한 70%가 물입니다. 이는 우리가 지구와 깊이 연결되어 있고 또 연결할 수 있음을 보게 하는 지점입니다.
물은 우리가 지구와 그 안에 거하는 생명들과 소통하게 도와줍니다. 뿐만 아니라 그 물이 처음 흘러나온 하나님에게로까지 가 닿게 도와줄 것입니다. 하나님은 물이 흐르는 곳에 언제나 나무가 무성하고 생명이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모든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도, 바다는 넘치지 않는다. 강물은 나온 곳으로 되돌아가, 거기에서 다시 흘러내린다.” (전도서 1:7)

이제 그 물이 다시 흐르는 것을 상상합니다. 그 흐름이 생명을 불러일으켜 세웁니다. 물이 순환합니다. 물이 흐르고 순환할 때에 지친 생명들이 새 힘을 얻고 일어섭니다. 강물이 흐릅니다. 눈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면서 물이 순환하고 그 순환 가운데 온 생명이 하나가 됩니다. 순환이 막히면 생명이라는 하나의 실은 끊어집니다. 그 흐름이 막힘이 없어 강이 건강합니다. 강이 흐름으로, 온 생명이 하나로 연결됩니다. 모든 생명이 골고루 하나님이 베푸신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신 복을 누립니다. 물 위기로 고통 받고 신음하고 있는 생명들이 치유되고 회복됩니다. 마르고 갈라진 땅에 비가 내리고, 광야에 샘이 넘쳐흐릅니다.
강이 온전히 흐르게 될 그 날을 위해 기도합니다. <끝>